Report/Research Note(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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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암만 고대도시 시타델(citadel, 성채)을 가다.
9년전 오늘, 요르단 암만에 있었다. 국왕주최 AL-FARIS 기사대회에 초청받은 것이다. 세계기사연맹(WHAF)이 한국형 기사와 터키형 기사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해 유럽 보급에 이어 중동으로 보급하는 계기를 만든 대회다. 지금은 각 대륙별 기사연맹들이 연대해 거대 조직이돼 세계무예마스터십종목으로 채택되어 있고, 많은 상금이 예상되는 기사월드컵을 준비중이다. 국내 무예로는 태권도 다음으로 해외에서 경기화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종목이 되고 있다. 일정 가운데, 요르단 암만의 고대도시인 시타델(citadel, 성채)은 잊지 못한 도시다. 당시 테러 등으로 주최측이 안전을 요구했지만, 시라텔을 그냥 지나칠순 없었다. 로마 도시에는12신들의 신전들이 세워져 있는데 시타델에는 헤라클라스의 신전이 세워져 있다. 이..
2021.05.26 -
1928 가노 지고로
1928년 암스트레담 올림픽에서 IOC위원인 가노지고로(현대 유도 창시자)가 참석한 사진이 독일신문인 De Telegraaf와 De Zaanlander에 실렸다.
2021.05.26 -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의 이해
인류무형문화유산이란? 200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에 의거하여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대표목록 또는 긴급목록에 각국의 무형유산을 등재하는 제도입니다. 2005년까지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프로그램 사업 이었으나 지금은 세계유산과 마찬가지로 정부간 협약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명칭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목적 문화다양성의 원천인 무형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고,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국가적, 국제적 협력과 지원을 도모하기 위함 연혁 1997 : 유네스코 프로그램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운영 2003 :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모델로 한 무형유산분야 국제협..
2021.05.13 -
태권도, 유네스코인류무형유산의 꿈은 가능한가?
동양무예가 서구사회로 전파과정은, 이미 서구사회 속에서 자기화(自己化,) 즉 문화적 변용의 단계에 이르고 있다. ‘ martial arts’라는 문화적 소재는 정신수련의 의미가 함장돼 동서양을 떠나 몸 문화로서 체육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것은 실제 현대스포츠의 대안적 소재로 제시되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동양무예의 서구사회로의 전파는 일본 무도(Budo)가 가장 먼저 시작했다. 그렇기에 서구사회에서 martial arts는 일본의 무도문화가 지배해 있다. 이러한 문화속에서 태권도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일본의 무도와 태권도가 다른 점이 많을까? 기술적 측면이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 무엇이 다를까? 어쩌면 태권도는 일본무도가 보여주지 못해 답답해 하던 서구인들의 ..
2021.04.06 -
<자산어보>에 왜 그림이 없지?
영화가 대박을 예고한다. 주변에서 이미 영화를 본 이들이 여러 평을 하며 추천한다. 홍어를 생각하면, 늘 가 떠오른다. 흑산도에 유배되었던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쓴 생물학 원전이다. 그래서 논문과 글들을 찾아 보았다. 에 담긴 또하나의 의미, 조선이 文을 숭상하면서, 또 한계를 보인 성리학의 문제가 드러났다. ......................... 1801년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가한 신해박해로 인해,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동생 정약용은 해남으로 유배를 갔다. 정약전은 생물학자의 기질이 있었다. 정약전 - “동생, 해족도설이란 걸 지어볼까 하네” 정약용 - “형님, 글로 자세히 쓰시고 그림은 그만두시지요.” 전근세 해양사 분야의 권위자인 김문기 부경대 교수는 ‘와
2021.04.06 -
폭력의 유래
김택근 작가님이 폭력에 대해 잘 정리해 주셨다. 이 칼럼을 읽으면 폭력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권력이 불순하고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면 폭력이 기승을 부린다. 우리 근현대사는 100년도 넘게 폭력이 지배했다. (중략) 1904년 대한제국을 찾은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는 부산항에 내리자마자 일본인에게 두들겨 맞는 한국인들을 목격했다. “부산역의 이 북새통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그 무리들 중에서 제일 왜소한 일본인이 키 크고 떡 벌어진 한 코레아 사람의 멱살을 거머쥐고 흔들면서 발로 차고 때리다가 내동댕이 치자, 곤두박질을 당한 그 큰 덩치의 코레아 사람이 땅에 누워 몰매 맞은 어린애처럼 징징 우는 모습이었다.”() (중략) 일제가 패망했지만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는..
2021.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