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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대가 여의도에 있었다면?
대한유도학교(현 용인대학교)의 소공동 시절 정문이다. 오른쪽 사진은 당시의 모습을 바탕으로 ChatGPT를 활용해 1차 컬러 복원한 것이다.이곳은 한국 근현대 유도사의 여러 굴곡이 중첩된 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강도관 조선지부가 사용하던 유도장이 있었으며, 해방 이후 이경석의 조선연무관이 법인으로서 소유권을 인정받으면서 대한연무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후에는 한국유도원이 이곳의 소유권을 인정받게 된다.1953년에는 이곳에 대한유도학교가 설립되었고 대한유도회 사무국도 함께 자리하면서, 소공동은 한국 유도계의 교육과 행정을 아우르는 중심 공간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대한유도학교는 이곳에 대한 점유권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소공동을 떠나 지금의 광진구 구의동 아차산 영화사 인근으로 이전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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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동의 금잔디와 용인대학교 무도대학의 정체성
대한유도학교, 지금의 용인대학교가 자리했던 서울 풍납동 캠퍼스의 모습을 1984년 대홍수 당시 항공사진을 바탕으로 ChatGPT를 활용해 컬러로 복원해 보았다. 흑백사진으로만 남아 있던 캠퍼스에 색을 입히고 나니 당시 학교의 모습이 조금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사진에 색을 입히는 것과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서는 당시 학교에 재학했거나 근무했던 동문과 교직원들의 기억과 증언이 필요하다.특히 궁금한 것은 운동장이다. 당시 대한유도학교 운동장은 이른바 ‘금잔디’로 유명했다고 한다. 선배들에게 여러 차례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정확히 어떤 품종의 잔디였는지, 운동장 전체가 잔디였는지, 어떻게 관리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고증이 필요하다.또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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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하나다
ITF 태권도는 또 다른 태권도가 아니다. 세계태권도연맹(WTF, 현 WT)이 창립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태권도의 모습이다. 국제태권도연맹(ITF)은 WT보다 먼저 창설됐다. WT가 오늘날의 ‘올림픽 태권도’라면, ITF는 ‘전통 태권도’라고 이야기해도 어색하지 않다.지금의 60대 이상 태권도인 가운데 상당수는 오늘날 ITF 태권도를 경험하며 출발했다. 태권도를 현재의 WT 체제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 역사는 1973년 이후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현대 태권도의 역사가 70년을 넘어섰지만, 초기 20여 년 동안 형성되고 발전했던 태권도의 모습과 오늘날 ITF로 이어지는 역사를 부인할 수는 없다.세계태권도한마당이 한창이던 지난주, 몽골에서는 ITF 아시아대회가 열렸다. 두 행사의 규모와 대회 내용은 서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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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38편의 검도추론
'검도(劍道)'라는 용어는 중국의 반고가 지은 《한서》의 '병서략(兵書略) 병기巧(교)'편에 〈검도삼십팔편(劍道三十八篇)〉에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이 본문의 내용은 현재까지 알 수 없다. 검도내용은 없지만, 당시 이 책의 〈수박 육편(手搏六篇)〉과 〈축국 이십오편(蹴鞠二十五篇)〉의 내용들을 토대로 보면, "수족을 익히고(習手足),器械를 편리하게 하며(便器械), 기틀을 쌓아 공수의 승리를 세우는 것으로 경기교를 통한 무술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맨손(수박), 무기(검도, 사법), 단체체력단련 및 진법(축국)으로 종합적인 군사체육시스템이 있었음을 말한다. 그런데 검술이라 하지 않고 검도라 했을까? 그 본문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일부에서는 '수도검(修道劍)'이라 하였으니 검도라 했을거라는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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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충주무예잼버리
15년전 충주세계무술공원에서 열린 청소년무예잼버리 아침운동장면이다. 예산 0원, 참가비와 충주의 타축제에 참여하며 프로그램을 설계했다.서일대 레크리에이션과 학생들의 기획과 운영이 돋보인 행사였다. 이 잼버리는 국비지원을 받아 무예가족캠프가 되었다.지금 충주는 무예를 버리고 택견만 택했다. https://youtu.be/keN0-7ia00I?si=26qdNsuTTa1ru1oM 2011 충주 무예 청소년 잼버리 현장 스케치2011 충주 무예 청소년 잼버리가 지난달 4일부터 6일까지 2박 3일간 충주 세계무술공원 일원에서 펼쳐졌습니다. 총 6...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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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이 경호원을 대하는 태도
대한민국의 대통령 경호는 특수 임무로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경호법)’에 국가 법적 구조 안에서 조직적이고 유기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명확한 지침과 범위를 제시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어 있다. 역대 대통령은 자신을 경호하는 경호원과 어떠한 관계였을까? 가장 인간적인 관계로 회자되는 대통령은 노무현대통령이다. 노무현대통령이 경호원과의 관계가 부각된 것은 윤석열대통령이 탄핵이후 대통령관저에서 경호원을 앞세워 저항하던 모습과 대비되는 과정에서 나왔다.지난 2003년 5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의 경호시범을 보다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자신 대신 ‘매일 죽는 연습’을 하는 경호원들의 숭고함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청와대에서 경호와 경비를 맡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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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과 역도산
한국 근현대사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존재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기억되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역도산과 최배달이다.역도산은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로 불리며 일본 대중문화를 바꾸어 놓았고, 최배달은 극진가라테를 창시하여 세계 무도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두 사람은 모두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재일 한국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일본 사회의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성공한 뒤에도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역도산의 본명은 김신락이다. 함경남도 홍원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체격과 힘을 자랑했다. 조선의 전통 씨름을 즐기던 청년 김신락은 일본 스모계의 눈에 띄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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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정권, 민주주의의 시작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참정권과 직결된 문제이며, 선거관리기관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민주주의는 선거 결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민이 자신의 한 표가 안전하게 행사되고, 공정하게 집계된다는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이 보장한 독립기관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가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 등 총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6년이다. 위원장은 국무총리급, 위원과 사무총장은 장관급 예우를 받는다. 이는 선거가 어느 권력에도 예속되지 않고 공정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헌법적 가치를 반영한 것이다.스포츠에 비유하면 선관위는 경기의 공정성을 책임지는 최고 심판기구다. 위원들은 심판위원장이고, 각급 선관위는 상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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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무예, 역사와 문화
"역사는 있는데 문화가 없다"는 것은 뿌리는 있으나 생명력이 부족한 상태라고 평가할 수 있다.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증명한다. 누가 창시했고, 언제 시작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설명한다. 반면 문화는 현재의 사람들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배우고, 즐기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다음 세대에 자연스럽게 전승할 때 비로소 문화가 된다.따라서 역사는 존재하지만 문화가 형성되지 못한 전통무예는 박물관 속 유물과 비슷하다.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가치는 매우 높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력과 지속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아무리 오랜 전통을 가졌다고 해도 수련하는 사람이 없고, 공동체가 없으며, 현대적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기록'에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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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첩보원, 체탐인(體探人)
조선시대의 체탐인(體探人)은 국가의 안보와 국경 방위를 위해 적의 동향을 탐지하고 정보를 수집하던 특수 정보요원이었다. 오늘날의 첩보원, 정찰병, 정보기관 요원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특히 북방의 여진족과 남해안의 왜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였다. 조선은 국경 지역에서 발생하는 군사적 위협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체탐인을 활용하였으며,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국가의 군사 정책과 방어 전략 수립에 핵심적인 자료가 되었다.체탐인의 활동은 매우 위험하였다. 이들은 적진이나 국경 너머 지역에 직접 잠입하여 병력 규모, 무기 보유 현황, 이동 경로, 공격 계획 등을 파악해야 했다. 때로는 상인이나 유랑민으로 위장하여 적의 생활권에 들어가 정보를 얻었으며, 발각될 경우 목숨을 잃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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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아시아오세아니아검도선수권(AOKC)
지난 주말 일본 도쿄의 일본무도관에서 제1회 아시아·오세아니아검도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23개국이 참가해 3단 이하부(남·여), 단위무제한부(남·여), 단체전(남·여) 등 6개 종별에서 경쟁을 펼쳤다. 대회 규모만 놓고 보면 아시아 검도가 성장하고 있는 듯 보인다.그러나 참가국의 검도 인구를 살펴보면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본이 약 210만 명, 한국이 약 50만 명으로 압도적인 규모를 보이고 있으며, 대만 7,000명, 중국 4,000명 수준이 뒤를 잇는다. 반면 상당수 국가들은 검도 인구가 100명 이하에 머물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는 한 개 도장의 수련생 수와 비슷한 규모에 불과하다. 미얀마의 경우 20명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검도의 아시안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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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F, 집행부 개편
WHAF 임원진들이 자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프로필사진을 제출했다.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그리고 각종 국제대회가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Executives of WHAF have submitted their profile photos wearing their respective traditional national attire. As the World Championships, World Cup, and various international competitions continue to grow, significant changes are being anticipated.#WHAF #horseback #arch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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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충성한 무덕제
사진은 1939년 식민지 우리나라에서 열린 무덕제 모습이다. 이것은 단순한 무도행사가 아니라 일본 제국에 대한 충성과 동원을 목적으로 한 정치적 의례였다. 가노 지고로를 중심으로 한 강도관과 대일본무덕회는 무도를 국가 이데올로기와 결합시켰고, 이러한 구조는 일제강점기 조선에도 이식되었다. 1천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 유도, 검도, 궁도 경기는 겉으로는 수련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식민지 지배 질서를 강화하는 도구였다. 이것은 한국 무예가 자율적 전통과 철학을 잃고 외부 권력에 의해 규정된 아픈 역사로 남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해방 이후이다. 우리는 일본식 통합 모델을 비판하면서도 자체적인 철학과 거버넌스를 구축하지 못한 채 계파 중심의 분열과 정체성 혼란을 반복하고 있다. 전통, 스포츠, 실전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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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 혜화문에서 활을 든 무사는 누구?
멀리 혜화문이 보이고, 한 젊은이가 활을 들고 있고, 그 옆 소년이 활을 들고 보조하는 모습이다.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재한 로웰의 사진작품이다.로웰은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이 체결된 뒤에 조선이 미국에 파견한 보빙사(報聘使) 에 참찬관(外國參贊官 및 顧問, Foreign Secretary and Counsellor)으로 고용된 인물이다.2 로웰은 보빙사 활동 을 마치고 조선에 입국하여 고종의 손님 자격으로 1883 년 12월 말 부터 1884년 3월 중순까지 서울에 머물렀다. 로웰은 미국으로 귀국한 뒤, 조선에서의 경험과 자신이 촬영한 사진들을 바탕으로 조선에 대한 책 CHOSÖN, THE LAND OF MORNING CALM, A SKETCH OF KOREA,(이하, CHOSÖN)(Lo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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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군은 태권도 성지? 용대리는 태권마을?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는 한때 대한민국 군사/무예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부대가 주둔해 있었다.제주 모슬포에서 창설되어 1953년 11월 26일에 강원 인제군 용대리로 이전해 1959년 1월 1일 20사단과 통합되며 해체된 제29보병사단이다. 이 부대는 ‘익크부대’, ‘태권부대’로 불렸고, 경례 구호조차 “태권”이었다. 초대 사단장은 태권도 명칭을 공식화한 최홍희 소장이었으며, 부대 내에는 실제로 오도관 도장도 존재했다. 태권도가 군 조직 속에서 체계화되고 상징화된 최초의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이 곳이었다.오늘날 용대리는 황태덕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물론 소중한 지역 자산이다. 그러나 인제군이 조금만 시야를 넓힌다면, 이곳은 ‘태권마을’, 더 나아가 ‘태권성지’로 충분히 재탄생할 수 있다. 태권도는 이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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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말하는 미래 스포츠와 무예는 어떻게 변할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개최된 국제스포츠과학학술대회의 주제는 이었다. 이 주제는 단순한 학술 담론을 넘어, 서구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체육학의 관점에 동양적 신체관과 철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 체육학계는 신체, 수련, 인간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동양의 무예는 기술 체계가 아닌 하나의 사상과 문화로서 서구 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그 당시와 유사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일상과 교육, 산업 전반을 재편하는 AI 시대에, 과연 '우리 체육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 가'라는 고민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생성형 AI에게 “미래의 스포츠와 무예는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