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Research Note(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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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 무인, 룽윈
중국 근대 武人의 역사다. 이 기사를 토대로 추가해 정리해 보면, 옛날부터 윈난(운남, 雲南)인들은 무(武)를 숭상했다고 한다. 윈난은 내세울 것이 없었다고 하지만, 국방력 하나만은 빠지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룽윈(龍雲)은 윈난의 군벌이었다. 체구 작았지만 검술과 봉술에 탁월했고, 사관학교에서 무술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윈난왕 룽윈을 배출한 윈난강무당은 장쭤린(張作霖·장작림)이 설립한 동북강무당, 위안스카이(袁世凱·원세개)가 텐진(天津)에 세운 북양육군강무당과 함께 청 말의 3대 군사학교였다. 윈난강무당 초대 교장(監督) 리건위안(李根原·이근원)과 교관 탕지야오(唐繼堯·당계요)는 한반도와도 인연이 많았다. 탕은 예관 신규식 선생과 친분이 두터웠다. 윈난의 군·정을 장악하자 한국 청년들에..
2021.03.20 -
베트남과 조선의 무관 20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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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출입증, 부험
부험(符驗)이다. 쉽게 이야기해 성문출입증이다. 왕의 호위병들이 밤에 도성의 성문을 통과할 때 사용하던 출입허가 증표이다. 부험에는 해당하는 성문(城門)과 시간대(時間帶)가 적혀 있다. '출입문', '시간'이 새겨져 있다. 서울의 사대문에는 모두 경(更)마다 사용하는 부험이 있었는데, 모양은 둥글고 한쪽에는 어느 경부험(更符驗)이라고 쓰고 한쪽은 어느 문이라고 썼으며, 반으로 나누어서 좌반부(左半符)는 궁중에 간직하고 우반부는 각 문의 수직소(守直所)에 분배해주었다. 성문의 개폐·보류와 당해 문에 사용하는 부험은 승정원에서 출납을 청하여 입직금군(入直禁軍)에 교부하였는데, 만일 초경(初更)에 해당할 때에는 다음 경의 부험까지 함께 가지고 갔다. 이것은 가지고 가는 중에 혹 경이 넘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다..
2021.02.15 -
마패 훔쳐간놈들 가져와라!
마패(馬牌)는 역마(驛馬)의 지급을 규정하는 패로 발마패(發馬牌)라고 한다. 고종31년(1894) 갑오개혁과 함께 역마제가 폐지될 당시 마패는 상서원에 보관중이었다고 한다. 당시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하던 명나라 연호의 마패 700여개와 사용중이던 청나라 연호의 700여개가 있었다 한다. 그러나 현재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는 22개 정도뿐이란다. 민가에서 일부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마패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가져가고, 6.25전쟁에 참가한 유엔군들이 가져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발견된다..1960년대 조선시대 마패가 고갈되자, 외국인들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마패를 유기점에 대량으로 주문해 조선호텔과 반도 아케이트 등에서 관광상품으로 판매했다고 한다. 위조품이 등장하기 시..
2021.02.14 -
조선 왕은 무를 천시하지 않았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오는 3월 1일까지 열리는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 展'에는 무관복을 입은 철종의 31세 실재 모습이 공개되었다. 초상화와 나머지를 복원해 선보이고 있다. 조선시대는 정말 무武를 천시했을까? 임지윤(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YTN인터뷰(2021.2.13.보도)에서 "조선 왕조는 문반과 무반 두 계층이 공존하는 양반국가였고 조선 왕들 또한 무인이나 무예를 결코 비천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무관의 복식을 보면, 화려한 갑옷과 투구의 모습에서는 왕의 신변 보호에서 나아가 왕의 위용을 높이려는 목적이 강하게 나타나며, 신하들의 갑옷에도 용 문양을 썼다. 또한 조선은 군사의례를 통해 왕의 권위를 드높였고, 오방색 군사 복식을 통해서 왕의 군권 장악을 가시화했다는 논..
2021.02.14 -
'검도'라는 말 자체가 일본용어다.
우리나라에서 원래 '검도(劍道)'라는 용어는 없었다. 무예에 '검도'라는 용어를 쓰는 순간, 일본을 바탕으로 하는 용어가 되어 버린다. 전통무예라 하면서 '~검도'라 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국내 검도(Kendo)인들은 '예문지' 劍道(검도) 38편을 이야기하는데, 이 책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보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검도(劍道)'는 일본 검도인들에 의해 '격검(擊劍)'에서 변경한 명칭이다. '유술'이 '유도'로 바뀐 시기다. 이러한 명칭변경은 일본에서 중학교 교과서 과목으로 채택시키기 위한 일본무도인들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용어는 함부러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1970년대 무작위로 일본무도가 우리 것과 구별되지 않는 묘한 현상이 생겨났고, 1980년대 전통무예의 용어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2021.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