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City Marketing(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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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학은 지역생태계의 중심축이다.
청년은 도시의 활력이고, 미래를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핵심 인구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지방은 청년 인구의 유출로 인해 빠르게 쇠퇴하고 있고, 이 흐름이 멈추지 않으면 지방 소멸이라는 말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 생태계의 중심축이다. 대학 하나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크고, 다양하다. 지방대학 폐교나 학생 수 감소로 도시가 급속히 쇠퇴한 사례가 많다. 경북, 전북, 강원 같은 곳에서는 대학 하나의 명운이 지역 전체의 존망과 직결되기도 한다. 무너지는 지방대학이 블랙홀이 되고 있다. 지방대학이 문을 닫자 지역이 함께 급속도로 소멸되고 있다. 대학이 있으면 청년이 들어오고 청년이 오면 의식주 등 다양한 소비가 생기고 그로 인해 지역산..
2025.04.13 -
몽촌공원이 올림픽공원으로
올림픽공원의 계획단계에서의 이름은 '몽촌민족공원'과 '만국공원'이었다. 올림픽이 끝나자 이러한 공원의 특성은 사라지고 동네 사람들 산책공원과 경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올림픽 레거시 우수사례로 올림픽공원이 포함되었다.올림픽공원은 제대로 살린 걸까? 원래의 계획과 지금의 모습은 얼마나 많이 변해 있을까?
2025.03.30 -
일제강점기 경성운동장
1925년 일본의 동궁(쇼와 덴노) 결혼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되었다. 경성운동장은 일본 황실 황태자의 결혼식이라는 일본의 최대 경사를 경축하는 뜻을 담는 동시에 "특히 운동을 사랑하시는 동궁전하의 기념사업으로 운동장 설치계획을 세움은 적당한 처치"라는 것이 그 건립의 이유였다. 경성운동장의 부지가 조선시대의 훈련원(訓練院) 자리와 한양도성 성벽을 허물고 남은 공터였던 만큼, 한민족에게는 식민통치의 역사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의 굴곡이 뒤엉킨 자리에 그것도 일본 황태자의 결혼식을 기념하는 명분으로 건설한 것이 바로 축구장, 육상경기트랙, 야구장, 테니스장, 수영장 등을 아우르는 '동양 최대의 종합경기장' 경성운동장이었다.
2025.03.15 -
관악산에 맘모스유원지 계획이 있었다.
1969년 관악산주변 1백만평규모의 맘모스유원지를 계획했다. 국비 24억3천만원과 민자 59억6천만원을 들여 1970년 기공하고 1974년 완공목표였다. 여기에는 동물원 40만평, 녹지 40만평, 그리고 골프장 20만평 등 호화판유원지를 만드는 계획이었다. 이외에도 풀장, 영화관, 야외극장, 호테르 모노레일 등의 시설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관악산 개발계획일환으로 지어진 관악컨트리클럽(현 서울대 관악캠퍼스)은 이미 1967년에 지어졌었다. 당시 서울시는 관악산 2차 계획으로 90만평에 묘지공원과 화원 들을 마련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도 1970년 시내에 단과대로 흩어져 있던 서울대를 관악컨트리클럽부지로 이전하는 것이 확정됐다. 서울대 이전계획 발표는 공릉동에 있던 ..
2025.03.15 -
풍남문
전주의 풍남문이다. 옛 전주읍성의 남쪽문으로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라 불렀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영조 43년(1767) 화재로 불탄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순종 때 도시계획으로 성곽과 성문이 철거되면서 풍남문도 많은 손상을 입었는데 지금 있는 문은 1978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보수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2025.03.13 -
뽕밭궁터, 경희궁
경희궁은 조선의 5대 궁궐 중 하나로, 한때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3대 궁궐로 불렸다. 인조부터 철종까지 10대에 걸쳐 조선의 중심 역할을 했다.그러나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과 함께 경희궁의 소멸이 시작되었다. 경희궁의 전각들이 해체되어 경복궁 복원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이후 경희궁의 빈터는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뽕나무 밭으로 조성되었고, 한때 ‘뽕밭 궁터’로 불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궁궐 담장이 모두 철거되었으며, 그로 인해 경희궁의 정확한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궁터에 일본 거주민을 위한 교육 시설이 세워졌다. 1915년, 일본인 자녀를 위한 최고 수준의 중등교육 기관인 경성중학교가 경희궁 터에 건립되었다. 이후 경성중학교는 해방이후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서울고등학..
2025.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