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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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최초의 교도관 검도대회는?
국내에서 개최된 최초의 교도관 검도대회의 기록을 찾았다. 1915년 10월 17일 부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 강당에서 부산일보 주최로 제1회 전국감옥격검대회가(전국교도관검도대회) 개최되었으며, 이 당시 경기방식은 일본무덕회에서 제정된 규정과 일본무덕회 제정 검도형도 선보였다. 검도형이라 하면 1912년에는 경시류목태도형의 영향을 받아 대도(大刀) 7본과 소도(小刀) 3본인 대일본제국검도형(大日本帝國劍道形)을 말한다. 이 대회에는 경성, 평양, 해주, 대구 등을 시작으로 각 지역의 감옥소(교도소)에서 출전한 100여명의 교도관들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안을 들여보면 교도관이외에도 신문사, 지역 유지, 시도관계자들도 출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검도대회의 가장 경쟁력이 있던 경찰을 제외한 검도인들이 참여한 것으로 ..
2024.01.09 -
검도의 요세이Yosei
검도에서 요세이(yosei)라는 것이 있다. 한자로는 餘勢인데, 공격자가 상대를 타격하고 몇걸음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이나 다른 무예인들이 보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흔히 '잔심'으로 여기기도 한다. 기-검-체에서 체(體)는 몸의 움직임 과 올바른 자세를 의미하는데, 이것을 발놀림 및 신체 움직임과 관련된 자세로 해석해 잔심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요세이를 검도기술로 논의된 것은 죽도를 사용하는 검도가 정착되면서 시작됐다. 일본 학자들은 검도 고유의 동작인 발구름을 수반하는 요세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은 쇼와시대(1926~1989) 초기 무렵으로 보고 있다. 요세이는 후속 기세를 수반하는 공격인 잔심으로 인식되어 유효타격 조건에 부합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
2023.01.12 -
일본 검도 범사가 조선을 찾았다
일본검도계의 권위있는 범사(範士) 나카야마 히로 미치 (中山博道, Nakayama Hiromichi, 1879-1958)가 1936년 조선을 방문했다. 일본 최고의 검도인이라 불린 그는 전일본검도연맹 창립의 중추적인 인물이다. 그는 경성의 경찰관 전용 무도장에서 당시 일반인들과 중학교 이상의 검도부 학생들에게 특강을 했다. 당시 그가 검도 특강을 위해 공식방문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을 여행하고 경성에 들러 이틀간 강습회를 갖은 것이다. 연사(練士) 두명과 4명의 검도인이 있었다. 검도뿐만 아니라 이아이도와 장도에도 범사 칭호를 받은 인물로, 죽도검도와 이아이도는 하나라고 강조하였고, 당수를 접한후 당수는 맨손무술에 의한 검도라고 긍정적 평가를 하기도 하였으며, 아이키도의 창립자인 우에시바 모..
2020.07.16 -
일제시대에도 이도류검도가 있었다.
1932년 10월 6일. 동아일보기사다. 조선무도관에서 관원을 모집하는 내용을 다룬 기사인데, 흥미로운 것은 펜싱이 최초로 유입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이도류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고의 내용으로 보면, 일본의 검도, 이도류, 펜싱이 같은 활동을 했음을 말해 준다. 같은 시간대에 수련하는 시간을 안내하고 있다. 오후반의 경우 검도, 이도류, 서양검도(페싱)이 4시반에서 6시, 권투가 6시부터 7시반, 유도와 씨름이 8시에서 10시까지로 되어 있다. 이도류(二刀流)라는 말을 들어 보통 미야모토 무사시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이도류의 창시자로 미야모토 무사시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廣辭苑》에서는 "이도류와 이천일류는 동일하며, 이천일류는 미야모토무사시가 창시한 검도의 일파(一派)"(新..
2011.10.03 -
검도, 세계대회 우승자 김춘경
1969년 4월 27일. 세계검도선수권대회의 전신인 사회인국제검도대회에서 개인전에 고 김춘경선수가 우승을 차지한다. 아마도 최초의 개인전 우승일것이다. 그는 5단부이하 경기에서 일본의 선수를 상대한 결승전에서 3분 32초만에 머리와 허리치기로 우승을 차지한다. 그는 육사 검도교관을 비롯해 용인대 검도교수로 재직한바 있다. 그의 지도철학은 "검도는 발로 하는 것이다"였다. 항상 기본을 중시했고, 머리나쁘면 검도를 못한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이러한 이유로 하체훈련을 강조했고, 용인대 뒷산인 부아산 크로스컨트리를 자주 시켰다. 그는 검도계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남아 있다. 단별선수권대회라는 대회가 있는데, 동일한 단끼리 하는 시합으로 1단부터 7단까지 우승한 적이 있다. 대학시절 소주를 함께 마시며 한 말씀이 ..
2010.11.06 -
검도, 최초의 국가대표는?
네이버 '검도세계카페'에 닉네임 셋쇼마루님이 올려주신 사진과 글입니다. 사진과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바로 이사진은 1967년도 최초의 국가 대표 선수들입니다. 18명의 정예선수들이 3조로 갈려 풀리그전 끝에 A조 우승 강용덕 B조 우승 김춘경(위 사진에는 훈련불참으로 없음) C조 우승 김재일, 자동케이스 김영달, 정태민, 5명이 선발되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제 3회 국제 사회인 대회 출전자 들입니다. 5인조 첫 시합에 일본에 유일하게 이긴 강용덕 선생은 상대 오가켄지로(전 무도대학장)을 2:0으로 격파한 귀재입니다. 좌로 부터 서정학, 정태민, 김영달, 서동준, 강용덕, 이홍국, 김석춘, 전동욱, 윤병일, 그 옆은 당시 서울대학생으로 김영배 선생 조카가 그냥 참여 한 것 입니다. 마지막 김영배 선생 ..
2010.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