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Life/世念(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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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독립기념일이 아닌 광복절이라 할까?
오늘은 광복절이다. 일제에 해방되던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일본천황은 8월 14일 연합군에 항복의사를 밝혔고, 15일 정오에 천황의 항복 녹음본을 방송국에서 전국방송으로 내 보냈다. 당시 천황의 방송은 잡음이 많았고, 황실 언어를 사용해 일반인들이 바로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한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일제에 해방되던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일본천황은 8월 14일 연합군에 항복의사를 밝혔고, 15일 정오에 천황의 항복 녹음본을 방송국에서 전국방송으로 내 보냈다. 당시 천황의 방송은 잡음이 많았고, 황실 언어를 사용해 일반인들이 바로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한다.항복서명은 9월 2일 외무대신이 미군함에서 했다. 오늘은 우리에게 독립기념일이다. 그러나 우린 왜 독립기념일이라고 쓰지 않았을까? 다른 나라들은 독립기념..
2019.08.15 -
부처와 조마사 이야기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가다 조마사(調馬師:말을 길들이는 사람)를 만났다. 부처님이 조마사에게 물었다. "말(馬)을 길들이는데 몇 가지 방법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우리들이 말을 길들이는 방법으로는 세 가지가 있나이다. 첫째는 유연법(柔軟法: 부드럽게 달래고 칭찬하며 가르치는 법)이 있고, 둘째로는 강강법(剛强法: 벌을 주면서 강제력을 동원해 가르치는 법)이 있고, 셋째로는 유연강강법(柔軟剛强法: 잘 하면 칭찬하고 잘못하면 벌을 주면서 가르치는 법)이 있나이다." "만일 그 세 가지 방법으로도 길들여 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때는 죽여서 고기와 가죽으로 쓸 수밖에 없나이다." 조마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리고 그는 부처님에게 묻는 것이었다. "세존께서 중생을 제도하시는 데는 몇..
2019.06.02 -
서울광장 잔디는 숨을 쉴까?
서울광장은 매주 무대를 설치했다 뜯었다한다. 행사업체들이 주말행사를 위해 반복되고 있다. 이 비용만 일년치 계산하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나온다. 이뿐인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중장비차량부터 이벤트차량들로 서울광장을 둘러싼다. 광장다운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이럴바에는 광장을 야외공연장을 바꾸는게 낫겠다. 잔디는 뭔 고생인가.
2019.06.01 -
현대자동차, BTS 홍보대사 위촉으로 약 6000억 원의 홍보 효과
현대차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빅데이터 분석 전문업체 ‘에스엠투네트웍스’는 BTS 홍보대사 위촉으로 현대차가 약 6000억 원의 홍보 효과를 얻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제 '현다이'가 아니라, '현대'로 알려지지 않을까? HYUNDAI Motor and Social Network Service (SNS) SM2 Networks, a big data analysis company, estimated that HYUNDAE Motor received about KRW 600 billion in promotional results by commissioning a BTS PR ambassador. Would not it be known as HYUNDAI(현대), not Hyundai(현다이, ヒュンダイ)..
2019.05.20 -
방치된 독립문
말로만 자주독립을 외치고 산다. 독립문이 방치수준에 있음에도 말로만 역사바로쓰기를 하고 있다. 독립문(獨立門)은 1896년11월에 착공되어 1897년에 완공되었다. 독립협회가 중심이 되어 조선이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독립한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영은문을 무너뜨리고 그 터에 지은 것으로 서재필 주도로 건립된 것이다. 독립신문은 1896년 6월 사설에서 "이 문은 다만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러시아로부터, 그리고 모든 구주 열강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독립문이여 성공하라. 그리고 다음 세대들로 하여금 길이 잊지 않게 하라"고 외쳤다. 지금의 독립문은 고가차도 건설로 인해 제자리에서 쫓겨난 곳에 있다. 1979년 성산대로를 건설하고 금화터널과 사직터널을 잇는 현저..
2019.05.19 -
고종은 왜색장례식이였다
어릴적 동네에서 장례때 방법에 대해 논쟁한 것을 잊지 못한다. 왜 논쟁을 했을까 했더니 그 이유를 찾았다. 16C 성리학이 성립되고 다양한 상례제서들이 나왔다. 그리고 일제 1934년 의례준칙으로 법제화했다. 요즘 장례식장의 모습, 국화 영정. 삼베 수의, 상주 완장, 유족 검은 리본 등은 전통장례 문화가 아니라, 일제 식민지의 잔재다. 영정을 국화로 장식하는 방식은 일본의 상조문화와 함께 유입됐다. 80년대 일본의 상조문화가 한국에 처음 유입됐고, 이후 한국의 장례업자들이 일본의 전문가에게 최신 꽃장식을 배워온 것이다. 100년 전 고종은 일제 주도의 '국장'으로 왜색화된 저승길을 떠난 것이다.
2019.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