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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을 잊었는가?
12.3일 밤, 계엄의 발효는 온 나라를 긴장시켰다. 시민들은 이를 막기 위해 나섰고, 국회는 계엄을 해제했다. 그 다음 날의 상황을 기억하는가? 군 부대장들은 죄인처럼 인터뷰를 했고,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던 의원들은 인터뷰를 피하며 눈치를 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지금의 모습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당당해졌다. 벌써 잊어버렸다. 어떤 이들에게는 참 쉽게 잊어지고, 잊혀지고 싶은 날일 것이다. 그들은 국민을 분열시키는 발언을 쉽게 한다. 오히려 시민과 야당을 향해 내란이라 주장한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이런 코미디도 없고 그들의 민낯도 마지막 발광으로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이 계엄에 동조했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도둑이 제 발 저린법이다. 123계엄의 사법적 판단은 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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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공원이 올림픽공원으로
올림픽공원의 계획단계에서의 이름은 '몽촌민족공원'과 '만국공원'이었다. 올림픽이 끝나자 이러한 공원의 특성은 사라지고 동네 사람들 산책공원과 경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올림픽 레거시 우수사례로 올림픽공원이 포함되었다.올림픽공원은 제대로 살린 걸까? 원래의 계획과 지금의 모습은 얼마나 많이 변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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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 레슬링 도장이 있다.
며칠 전 지나가는 길에 레슬링 도장이 눈에 들어왔다. 43년 전, 구로동 이화아파트 버스 종점 맞은편에서 본 레슬링 도장 이후 두 번째로 마주한 장면이었다. 대학 시절 레슬링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정말 훌륭한 스포츠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온 것이 아닐까 싶다. 레슬링은 우리말로 씨름을 뜻한다. 전 세계에는 다양한 유형의 레슬링이 존재하며, 우리가 익숙한 것은 올림픽 스타일 레슬링이다. 유럽의 귀족학교에서는 펜싱, 승마, 럭비와 함께 레슬링도 중요한 스포츠로 여겨진다. 생활체육 #레슬링, #레코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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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닭(人)싸움놀이, 정규스포츠종목 등극
각투사 경기장면 . / 베이징각투사협회 홈페이지 캡처'닭(人)싸움놀이'가 글로벌 스포츠로 성장하고 있다. 어릴 적 소풍이나 동네 골목에서 즐겨 하던 깨금발 싸움, 바로 이 경기가 중국에서는 '각투사(脚斗(鬪)士, Judose)'라는 이름으로 중국 국가체육총국 중국무술협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있다.중국에서는 각투사의 기원을 5천 년 전 치우놀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고대 중국 북부 농촌 지역에서 인기가 높았던 민속놀이로, 중원 평원에서 황제와 경쟁한 치우를 기념하는 의미를 지닌다. 치우놀이가 각종 축제와 경연에서 인기를 끌며, 북방에서는 목발싸움, 남방에서는 닭싸움으로 불리던 이 놀이는 이제 스포츠로서 발전했다. 이 경기는 기업인 우예다가 2005년부터 다년간의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경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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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선수는 은퇴후 속초에 있었다
1970년대말 장영철파동이후 레슬링이 침체되고 전두환정권이 들어서면서 프로레슬링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김일은 속초를 향했다. 그곳에 김일수산을 차렸다. 명란젓과 미역 등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한국수산물을 수출하기 위해서다. 특히 일본에서 '다라코'로 불리는 명란젓은 인기가 있었다. 김일은 이 명란젓 장사로 배를 8척을 가질정도로 돈을 벌었다. 연간 900톤정도였다고 한다. 1980년대중반 명태가 잡히질 않았다. 결국 문을 닫았다. 김일은 그 이전에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회고한바 있다. 1960년대 일본에서 큰 돈을 벌어 왔을때 강남 허허벌판이 평당 125원이었다. 땅을 사기로 한 그 해, 극심한 가뭄이 왔다. 대통령까지 논으로 나가 하늘을 쳐다볼 정도였다. 김일은 땅 5만평을 살 돈을 국가에 내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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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프로레슬러의 추억
사진 왼쪽으로부터 김일,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역도산, 여건부. (해설 김수홍, 사진 김남훈 페북)https://www.facebook.com/share/1Adm8aDf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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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검도회중앙도장(서대문)
1989년 1월 26일자 매일경제신문에 대한검도회 중앙도장이었던 서대문형무소의 소년감별소(서대문구 현저동 소재) 구내 단층건물이 주변의 사적공원화 계획에 따라 계약을 만료해 중앙도장을 내놓아야 했다。이 중앙도장은 1985년부터 보증금 6천만원에 월 55만원의 세를 내고 대한검도회가 중앙도장으로 사용하였었다。 여기에서는 대표선수뿐만 아니라 실업팀의 선수들이 합동훈련 등을 할 수 있으며、 250평규모로 국제검도연맹에서도 전용검도장을 보유한 대한검도회 중앙도장에 관심을 보인바 있다。 당장 1988년 세계검도선수권대회 직후 서울시의 결정된 사항이라 대한검도회는 많이 당황해 했다。 중앙도장의 철거가 불가피해지자 공군사관학교였던 보라매공원의 탁구장을 임대요청했지만 여기는 공원관리 등의 이유로 거부했다。 이외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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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닭싸움을 스포츠로 만들다
우리가 잘 아는 닭싸움놀이가 스포츠화되었다. 중국의 국가체육총국 중국무술운영관센터와 중국무술협회에선 '脚斗士(Judose)' 를 공식 종목으로 채택해, 각 학교 뿐만 아니라 일반팀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고 있다. 언제 아시안게임으로 진출할지 모른다. 2011년 충주세계무술축제에서 닭싸움대회를 테스트이벤트로 행한적이 있다. 상당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그 다음해에는 형식적으로 체험수준으로 이어지다가 사라졌다. 당시에 이미 대학축제에서 대회가 열렸다. 치킨관련 기업들은 대학축제 닭싸움대회를 후원했다. 전통놀이를 스포츠화한다는 것은 체육전공자들이 스포츠의 제도적 특성만 파악하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하던 찜뽕(손야구)도 다른 나라에서 '베이스볼5'로 만들어져 청소년올림픽종목이 되었다. 우린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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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해방이후 만든 대한민국의 상품중 가장 돋보이고 훌륭한 것이다.
태권도는 최고의 특혜를 받았다. 유도와 태권도의 해외지도자 파견하던 시기, 유도지도자와 차별화하려는 태권도인들만의 종주국론은 1970년대 한국체육의 변화기에 적중했다. 그리고 1970년대 정부가 체육시설 건설계획이 한창이던 때, 한강이남에 중앙도장을 짓겠다는 생각은 기존 체육종목들의 한강이북 한양도성내라는 틀을 깨는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태권도의 세계화에 불을 지필수 있었던 것은 세계군인체육대회 종목과 세계대학스포츠연맹에 가입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합경기대회 종목으로 채택되어야 한다는 당시 김운용의 국제스포츠 감각은 통했다. 아래 사진은 태권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태권도중앙도장의 이야기와 국제스포츠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1971년10월20일자 동아일보에 '태권도'라는 글이 실렸다. 당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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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무도관, 일본무도진흥의 중심이다.
일본무도를 진흥하는 중앙조직은 재단법인 일본무도관이다. 1964도쿄올림픽 유도경기장과 레슬링경기장으로 지어진 무도관을 올림픽기금 등으로 재정을 확보해 재단법인을 만들었다. 중앙에 일본무도관, 각지방에 지방무도관을 두고 있다. 이 재단에는 일본체육회 종목인 9개의 무도종목으로 구성된 일본무도협의회, 각 유파무술들을 유형별로 관리하는 일본고무도협회가 있다. 그리고 월간무도와 무도학회지도 지원해 발행하며, 일본국제무도대학도 이 재단이 깊게 관여하고 있다. 중학교 무도교육이 의무화가 이루어지면서 이에 대한 프로그램과 지도자교육 등의 역할도 중요시 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국비지원을 통한 무도진흥사업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 중에서 유독 재단이 관심있게 지원하고 있는 사업중 하나가 '전일본소년소녀무도연성대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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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학입시 광고는?
지금은 비대해진 대학과 대학학과들, 1980년대후반 최대 수험생들수에 비해 입시경쟁률은 치열했다. 주요 종합대학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단과대학으로 '대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당시 국내 대학들은 여러 가지 문제와 도전에 직면해 왔으며,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90년대 대학의 확장이 아닌, 글로벌화, 산업과의 협력, 연구 중심 교육을 강화했다면, 우리 대학들은 더욱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 한국 사회는 민주화와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겪는 시기였다. 이 시점에서 대학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교육을 제공하고, 정치적·사회적 참여를 중시하는 교육을 통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성장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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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파견 유도사범, 그들은 해외에 나가 무슨일을 하였을까?
1960년 8월 20일자 경향신문 4면에는 유도특집을 다루었다. 그 중에서 해외파견사범의 명단이 공개됐다. 이미 파견을 다녀온 사범과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범, 그리고 파견될 사범들의 명단이다. 대부분 용인대(당시 대한유도학교)출신들이다. 파견될 사범에 김대기, 김위생, 장주호, 김규하, 이정국, 지섭이 있고, 파견되었거나 귀국한 사범으로는 최인도, 오응서, 김홍낙, 홍만호가 있다. 지금도 생존해 계신 선생님들도 계신다. 태권도보다 유도사범들이 먼저 파견된 이유, 이후 유도와 태권도 두 종목에서 파견된 이유, 그리고 그들이 해외에 나가서 유도나 태권도지도이외에 어떤 또다른 일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국무예사에서 중요한 기록이 된다. 태권도는 태권도해외진출사 연구를 통해 일부 밝혀졌지만, 유도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