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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격투기 선수 꿈 꾸다가 배구 국가대표선수까지
종합격투기선수를 꿈꾸던 소녀가 배구선수가 되었다. 수원현대건설의 이다현선수 이야기다. 추계초등학교, 중앙여중, 중앙여고를 졸업한 그녀는 배구 국가대표 류연수의 딸이며, 의정부 KB손해보험 이준영선수의 누나이기도 하다. 이다현은 3년간 필리핀에서 살면서 여성호신술로 인기가 있던 칼리 아르니스를 배웠다. 그리고 초등학교시절 종합격투기 선수를 꿈꾸던 중 부모님의 권유로 배구를 시작한 것이다. 강타 연타를 적절히 배합한 중앙 속공과 역대급 블로킹의 양효진에, 빠른 기동력을 통한 이동공격을 보여주는 이다현의 조합은 '미들 블로커 부자' 현대건설 전력의 핵심이라고 한다. 초등학교시절 칼리 아르니스를 배웠지만, 필리핀에서 3년이면 지금도 그 감각은 살아 있을 것이다. 칼리아르니스는 혹독한 교육으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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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고수 정치인이 있다.
이재명대표가 게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게임특별위원회 참석해 먼저 대학시절 즐겨했다는 '갤러그' 이야기를 꺼냈다.50원짜리 동전 하나 넣고 제가 18스테이지를 하면 보통 이게 100만점 가까이 된다.22 1시간쯤 걸리는데 한 바퀴 도는데 제가 필요한 시간만큼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 됐다. 그래서 한 300만점 정도 3시간 하고 있으면 주인이 와가지고 코드를 뽑고 50원짜리 저한테 던져주면서 나가라고 한다. 잘하면 그 실력을 살려가지고 그 길로 갈 수도 있었는데 어쩌다 이 길로 와가지고 (중략) 어릴 때 만화를 보면 불량학생 취급당했지만 이제 만화는 문화 산업의 기본 토대로 자리잡았다. 게임도 비슷하다.그는 지난 대선에서 게임과 e스포츠 분야 공약을 내 건 바 있다. 공약에는 이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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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이후 한류문화는 어떻게 될까?
계엄 이후, 한국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경제적 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세계는 이제 한국을 단순한 아시아의 국가가 아닌, 독창적이고 강력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한류의 확산, 특히 K-pop, 한국 영화, 드라마, 그리고 한국의 독특한 미용 산업 등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인의 물질적 풍요에 대한 인식은 개별적인 성공이 국가적 번영과 연결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즉, 개인의 성취가 공동체의 성취로 이어진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최근에는 세대 간 갈등과 성별 갈등이 심화되며 공동체 정신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개인에게 많은 책임을 부여하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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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종합대사전을 만든 사람
경향신문사가 간행한 체육대사전의 전모가 알려졌다. 1961년 3월 11일자 경향신문 전면에 당시의 집필진과 내용 등이 상세히 보도되었다. 체육뿐만 아니라 의학, 교육학, 행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집필진들이 참여했다. 참고문헌만 2300종에 달하고, 전문용어에서 인명, 사진, 외국, 스포츠종목, 해외 학자들의 이론, 그리고 사진과 인명 및 지명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했다. 1961년 10월 20일자 경향신문에서 자사 광고로 내 보낸 자료에 의하면, 당시 11월 15일부터 을 발행하는 내용이 있다. 당시 최초의 체육백과사전인 이 사전에 나온 내용들은 흥미롭다. 일단 무예와 투기종목에는 합기도, 권투, 검도, 유도, 활쏘기(현, 궁도), 태껸, 레슬링, 무술, 씨름종목만이 게재되어 있으며, 태권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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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예술대학과 국학대학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이 된 서바벌예술대학서라벌예술대학(서라벌藝術大學, Seorabeol University of Arts)은 1953년에 개교한 대한민국의 예술대학이다. 1953년 서라벌예술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하였다. 1954년 1월에 1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56년에는 교사를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성북구 돈암동으로 이전했다. 이듬해 9월 초급 대학(지금의 전문 대학) 인가를 받아 서라벌 예술 초급 대학이란 이름으로 신입생을 받기 시작했다. 총 정원 300명에 문예창작학과 100명, 연극영화과 80명, 음악과 60명, 미술과 60명 정원이었다. 1964년에는 4년제 정규 대학 인가를 받아 서라벌 예술 대학이란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총 정원 700명에 문예창작학과 100명, 미술학과 10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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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싸움이 스포츠가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닭싸움놀이가 스포츠화되었다. 중국의 국가체육총국 중국무술운영관센터와 중국무술협회에선 '脚斗士(Judose)' 를 공식 종목으로 채택해, 각 학교 뿐만 아니라 일반팀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고 있다. 언제 아시안게임으로 진출할지 모른다. 2011년 충주세계무술축제에서 닭싸움대회를 테스트 한적이 있다. 상당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그 다음해에는 형식적으로 체험수준으로 이어지다가 사라졌다. 당시에 이미 대학축제에서 대회가 열렸다. 치킨관련 기업들은 대학축제 닭싸움대회를 후원했다.전통놀이를 스포츠화한다는 것은 체육전공자들이 스포츠의 제도적 특성만 파악하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하던 찜뽕도 다른 나라에서 '베이스볼5'로 만들어져 청소년올림픽종목이 되었다. 우린 충성종목에 너무 얽매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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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시장 벌교식당 시락국밥
부산역 맞은편 초량시장 내에 위치한 벌교 식당은 4,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시락국밥이 있다. 선지국밥과 짜장밥 등 다양한 메뉴도 갖추고 있는데 시락국밥은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래기를 푹 삶아 된장과 함께 오랜 시간 끓여낸 시락국 특유의 깊고 구수한 맛은 정말 한국적인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부드럽게 퍼진 시래기와 된장의 진한 감칠맛, 거기에 살짝 칼칼한 양념까지 더해지면 밥 한 공기 뚝딱하는 건 순식간이다.특히 부산 초량시장 벌교식당의 시락국은 그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정말 인상 깊었던 메뉴다.벌교식당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을 정도로 숨겨진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이 오히려 현지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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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니면 안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필수적이거나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여기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이나 공동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태도는 협업을 저해하고, 타인의 성장을 막으며, 의사결정을 독점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조직이나 사회도 한 사람에게만 의존해선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이 없어도 시스템이 잘 돌아가도록 만드는 데 있고,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고 능력을 키우는 데서 나타난다.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이나 세력은 단기적으로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신뢰와 지지를 잃기 마련이다. 사회는 협력과 공존을 통해 발전하는데,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는 결국 공동체의 안정과 화합을 해친다. 역사를 봐도 분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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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척 5道
도척(盜跖 / 盜蹠)은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전설적인 도적으로 노나라의 현인인 유하혜(柳下惠)의 동생이다.부하가 도적에게도 도적의 도(道)가 있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妄意室中之藏 聖也, 入先 勇也, 出後 義也, 知可否 知也, 分均 仁也. 五者 不備而能成大盜者 天下未之有也. (장자 외편 거협(胠篋))도둑질 하러 남의 집에 들어갈 때, 무엇이 있는지 바로 알아맞히는 것이 성(聖), 남보다 앞장 서서 들어가는 것이 용(勇), 남보다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 도둑질을 해도 차질이 없는 곳을 터는 곳이 지(智), 훔친 것을 정당하게 나누는 것이 인(仁) 이라고 하며, 이 다섯가지를 갖추지 못하고 큰 도적이 된 자는 없다.https://youtu.be/DQUSBkmMVHM?si=QQqWbtq-q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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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폰
비화폰이 화제다. 비화(祕話, 말을 숨긴다) + 폰(phone)이다. 도청 및 감청, 녹음 방지 기능을 탑재한 보안용 휴대전화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비화폰을 안보폰으로 부르며 주로 대령급 이상의 군 지휘관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유출 시 현저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판단되는 ‘2급 비밀’까지만 대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2급 비밀은 북한군 동향 및 정보 자산으로 취득한 정보 등이 포함된다.과거에는 2G 휴대전화를 비화폰으로 사용했지만 2020년대 이후에는 2G 서비스가 종료되고 비화폰 지급이 10년이상 지나면서 5G로 직행해서삼성전자의갤럭시 S20휴대전화를 군 전용으로 교체하였다. 안보폰의 통화 기록은 국방부 자체 서버에 저장되며, 애플리케이션 및 보안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국군방첩사령부가 관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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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도쿄올림픽은 왜 취소되었을까?
도쿄올림픽은 1964년에 개최되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24년전 1940년 도쿄올림픽이 개최될 수 있었다. 1940년 도쿄올림픽이 개최되었다면, 아시아 스포츠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1931년 10월, 도쿄 시의회는 국제 올림픽 개최를 위한 제안서를 채택했고, 1932년에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1940년 올림픽 개최 의사를 공식 발표했다. 도쿄, 로마, 헬싱키의 3파전이었지만, 1936년 7월 IOC 총회에서 도쿄가 1940년 개최 도시로 선정되었다. 동시에 1940년 삿포로에서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유치 노력의 중심에는 강도관 유도의 창시자이자 도쿄고등사범학교(전, 일본무도전문학교, 현 츠쿠바대학교)의 교장인 가노 지고로(Jigoro Kano)가 있었다. 그러나 교통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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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유도학교 대도장은 어떤 모습일까?
대한유도학교 소공동 건물을 공개한다. 용인대학교 전신인 대한유도학교 소공동캠퍼스의 건물 모습이다. 일제강점기 강도관조선지부로 지어진 것이다. 1918년 9월 가노지고로는 경성에 강도관(講道館)조선지부 개설을 위해 방문했다. 그리고 같은해 10월 6일 경성중학교(현 경희궁) 대도장에서 정식 오픈한다. 1927년 6월 대한제국 왕실소유의 부지였던 소공동에 일본들이 예산을 들여 대도장을 짓고 강도관조선지부는 이 곳으로 이전한다. 소공동 도장은 강도관조선지부였다가, 해방 이후 조선연무관, 한국유도원과 대한유도학교가 자리한다. 당시 기공식 때의 사진을 공개한다. 현대에 와서 최초일거다. 이 건물은 애경에 팔았고, 거구장 로스구이집 식당이 되었다가 화재로 전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