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해방이후 만든 대한민국의 상품중 가장 돋보이고 훌륭한 것이다.
2025. 3. 16. 01:11ㆍ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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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최고의 특혜를 받았다. 유도와 태권도의 해외지도자 파견하던 시기, 유도지도자와 차별화하려는 태권도인들만의 종주국론은 1970년대 한국체육의 변화기에 적중했다. 그리고 1970년대 정부가 체육시설 건설계획이 한창이던 때, 한강이남에 중앙도장을 짓겠다는 생각은 기존 체육종목들의 한강이북 한양도성내라는 틀을 깨는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태권도의 세계화에 불을 지필수 있었던 것은 세계군인체육대회 종목과 세계대학스포츠연맹에 가입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합경기대회 종목으로 채택되어야 한다는 당시 김운용의 국제스포츠 감각은 통했다. 아래 사진은 태권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태권도중앙도장의 이야기와 국제스포츠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1971년10월20일자 동아일보에 '태권도'라는 글이 실렸다. 당시만해도 26개국에 5백만명의 수련인구라 하고 있고, 한국내 수련생이 1백30만명, 이 중에서 시합애 출전이 가능한 이가 10만명이라고 소개한다. 이 시기만해도 각 관별 갈등이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국제태권도연맹과의 갈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운용협회장의 태권도교본 제작과 한강이남 말죽거리에 2천5백평의 태권도센터를 짓는다는 이야기다. 이 태권도샌터가 지금의 국기원이다. 1972년 11월 30일 태권도중앙도장이라는 이름으로 준공된다. 1억5천만원, 1200평건물이다. 이 곳에서 1973년 5월에 세계선수권 대회를 기획하고 있었다. 1994년 2000시드니올림픽에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소식이 알려진다. 태권도 세계화를 외친지 22년만의 소식이다. 그리고 30년만에 2000년 올림픽에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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