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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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정책은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스포츠정책은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 정책이라는 비난에 자유롭지 못하다. 먼 앞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장의 목소리라며 여기저기서 나오는 민원들을 모아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스티커만 보인다. "현장의 목소릴 반영한다" 정치적인 용어로는 아주 안성맞춤이고 언론에 등장하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 현장이 늘 엘리트 스포츠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그 곳에 문제가 발생하면 언론은 대서특필하고 정부는 체육회나 협회를 압박한다. 그리고 많은 스포츠지도자나 관계자들은 마치 죄 지은냥 움츠려 있다. 이렇게 요란하게 한바탕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며 매 정권 때마다 재탕 삼탕에 껍데기만 바꾸어 스포츠비전이라고 내놓는다. 이러한 우려먹기식 정책은 정부와 밀착된 연구진들이 정년퇴직을 하고 나..
2024.09.13 -
스포츠경기장에 관중이 없는 이유
스포츠대회든 무예대회든 선수 참가자 수가 많은 것만이 성공의 척도는 아니다. 과거 프로레슬링이나 프로권투, 그리고 지금의 종합격투기나 e스포츠만 보더라도, 수 백, 수 천이 다녀간 대회보다 흥행수익은 더 높고, 관객은 더 많다. 정치인들은 전당대회 하듯 스포츠개막식에 많은 선수와 관중을 기대한다. 개회식을 마치면 행사의 90%가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 행사를 해본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다. 폐회식과 시상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진정한 프로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잊고 있다. 그래서 간혹 이벤트기획자는 기획에 묘미를 살린다. 일정을 진행하면서 킬러프로그램을 적당한 시기에 넣거나, 개회식에 내빈소개와 대회사에서 축사까지 지루할만큼 시간을 잡아 먹는 것을 영상으로..
2024.09.12 -
무예를 제국주의 산물로 치부하지 마라, 저항도 무예였다.
국내 진보 계열의 일부 관계자들과 언론인들은 ‘무예’를 제국주의의 산물로 보는 편향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일본무도의 유입과 보급 등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공부를 해 영국이 인 도를 점령했을 때 인도무술을 현지의 군사훈련체계를 만들어 군사목적으로 사용한 것을 안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저항한 것 역시 무예였음을 알면 조금 달라질지 모르겠다. 중국 각지의 민간무술이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되었고, 우리 독립군이 중국것이든 일본것이든 가릴 것없이 배워 저항했던 일도 있었다. 제국주의는 한 지역에 머물던 무술이 확산되고, 새로운 지역에서 적응되고 진화되었다. 우리가 가라테를 1930년대 중반에 유입되었지만, 이를 저항-문화적 변용 ..
2024.09.08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프로레슬러는?
1963년 2월 22일 있어던 국제 선수 선발 프로레슬링 대회 최종경기가 있었다.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이 대회에는 장충체육관에서 장영철, 송학수 조와 천규덕, 우기환 조와의 경기 모습과 여자 프로레슬러의 경기가 나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프로레슬링 경기모습이다. 국학대학 체육과 1학년에 재학중이던 옥경자, 박정옥, 유미숙이다. 여기서 박정옥과 유미숙의 경기가 있었는데 이들은 합기도와 유도실력을 갖춘 선수들로 1년간 프로레슬링을 훈련해 출전한 경기라고 한다. 1963년 6월 28일에는 국내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국제여자프로레슬링대회가 개최되었다.
2024.09.08 -
우리나라에도 국학대학이 있었다
최근 저출산 등으로 올해 147개 초등학교가 신입생을 받지 못했다. 학교 붕괴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특히 대학은 2024년 입시에서 교육대를 비롯해 국립대들도 신입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방 이후 여러 대학들이 국내에 설립되면서 5,16이후 군사정권이 시작되자 대종교계열의 대학들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졌다. 어쩌면 우리가 만든 대학들이다. 지금의 인사동에 있는 천도교 건물 부근에서 많은 대학들이 설립되었다. 국학대학이 있었다. 1929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던 보명의숙을 정봉현이 인수해 1933년 그의 장손과 형제들이 국학전문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은 것이다. 이 시기 최현배, 이극로, 양주동 등이 강의를 했고, 정인보는 한국학을 직접 강의했다. 1947년 11월 국학대학으로 승격하고 위당..
2024.09.08 -
검도수련에서 禪을 모르면 잡검(雜劍)이 된다?
왜 검도(Kendo)가 높이 평가 받을까? 여기에는 수련자가 경험하는 매력이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빠져 드는 그 무엇, 나와 상대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공부하게 하고 이를 일반 생활에 까지 연계되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禪(zen)이 검술에 적용된 모양새다. 劍과 禪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나라나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를 종합적으로 접목해 낸 현대 스포츠가 일본의 검도다. 그래서 검도를 '움직이는 禪(動禪)'이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시절 우리를 지도했던 김춘경 교수님은 "검도와 선(禪)이 한 길이라는 말(劍禪一如)이 있듯이 검도는 수련 자체가 움직이는 선(動禪)이다. 몸의 단련으로 '깨달음'의 길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시합을..
2024.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