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Sports(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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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나눠준다고 올림픽 취소?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 선수단에 콘돔을 제공하자 학부모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올림픽에서 콘돔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때부터다. 당시에는 선수당 1개정도였으니까 약 8천여개가 넘게 지급되는 양이었다. 그러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08베이징올림픽때는 선수단에 10만개, 2012런던올림픽 15만개, 2016리우올림픽 45만개였다고 한다. 1988년 콘돔지급은 에이즈가 국제사회에서 문제로 인식하던 때였으며,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의 콘돔의 지급이 급증한 것은 지카바이러스의 확대 때문이었다고 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는 11만개로 1인당 38개정도였다. 지난 도쿄올림픽에서는 대회기간중에서는 지급하지 않고 출국시 지급했다고 한다. 이것은 코로나-19로 선수들의 만남을 금지했..
2024.01.26 -
정치인 임오경의 리더십
스포츠인에서 정치인으로 자리잡은 임오경의원은 스포츠와 정치의 두 세계가 어떻게 다르고 어떤 것이 같은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스포츠세계의 경험을 정치판에 녹여 스며들게 하는 글을 썼다. 정치판에서 스포츠인의 편견, 유명인을 비례대표로 순간 사탕발림으로 세워놓는 것을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페어플레이의 세계가 스포츠라면,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는 정치세계에서, 스포츠정신은 더욱 정의로운 것이 된다. 스포츠에서 팀플레이는 위기에 더욱 강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런 리더십은 기존 정치인들이 스포츠인들에 비해 열등하다. 우리 정치의 오염물은 스포츠의 팀플레이가 아니라 패거리문화에 있다. 우르르 몰려 다니다, 위기가 오면 산산이 흩어지는 패거리정치는 나라를 ..
2023.12.30 -
대한체육회, 문체부에 강력 요구
대한체육회가 주무부처인 문체부의 딴지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는 1) 스포츠 국격 향상과 스포츠 외교력 강화를 위한 로잔 연락사무소 설치 허가, 2) 체육 단체 임원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한 체육회 정관 개정 허용, 3) 정부 조직으로서의 국가스포츠위원회 설립 등을 문체부에 더욱 강하게 요구한 모양이다. 우리 정부의 스포츠정책은 내치 표몰이용에 지나지 않으며, 정권에 따라 스포츠정책이 좌지우지한다기 보다는 매번 재탕삼탕으로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국가스포츠위원회는 스포츠기본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꿈틀대지도 않는다. 스포츠관계법들을 보더라도 시행하지 않고 있는 법들이 많다. 문체위 상임위 의원들은 이것만 분석해도 정부부처가 얼마나 일을 하지 않는 엉터리인지 알 수 있음에..
2023.12.27 -
토종 스포츠경기운영시스템 회사는?
백색도시 투르크메니스탄 아쉬가바트에서 개최된 제14회 세계크라쉬선수권대회가 종료되었다. 코로나팬데믹으로 굳게 닫혀 있던 이 나라의 문이 열렸다. 대회운영시스템은 세계무예마스터십 운영시스템이었던 국내 토종기업 민스페이스가 함께 했다. 이 시스템은 선수등록부터 중계방송까지 이어지며 모든 기록이 저장되어 분석까지 가능한 시스템이다.
2023.12.03 -
브레이킹댄스 1세대의 반성
브레이킹Breaking, 브레이크댄스가 2024파리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아래 영상은 지난 항저우아시안게임 브레이킹홍보영상이다. 중국은 이 홍보영상에 에너지를 쏟은 흔적이 보인다.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와 브레이킹은 큰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이미 예견되었고, 특히 브레이킹은 2018청소년올림픽에서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었으며, 2024파리올림픽 종목채택에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브레이킹의 올림픽화는 다른 댄스종목류와 무예부문 퍼포먼스 종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스포츠는 유사 모양새라면 한 종목이 빛을 보고, 나머지종목은 아류나 마이너스포츠로 인식되는 냉정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민감하게 변화화는 문화다. 그 변화에 IOC도 변화고는 있으나, 브레이킹의 기존 화려함..
2023.12.03 -
김구선생도 매주 갔다는 경마장은?
동대문구 신설동에 경마장이 있었다. 그 이전 동부이촌동에 있던 경성경마장이 홍수로 피해(1925)를 입어 신설동으로 이전한 것이다. 신설동 경마장은 1927년 가을 착공해 1,200m의 주로와 목조 2층 관람대, 단층 투표장, 150두 수용 규모의 마사 5동의 시설을 구비하였다. 또한 관람대 중앙에는 3층에 이르는 귀빈실을 마련하고, 사무실, 식당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었다. 신설동 경마장은 1928년 9월 20일 개장하여 광복 이후에는 하루 입장객이 4천명을 넘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해방이 되고 김구선생은 이 곳을 자주 찾았다한다. 해방을 보지 못한 그는 모친의 유골을 안장하는데, 경마장 기수들이 도와 주었다고 한다. 이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지만 그는 경마를 좋아 했다고 한다. 이 경마..
2023.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