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City Marketing(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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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한국경찰이 있다
파리에 한국경찰들이 있다고 한다. 경찰청이 파리 올림픽·패럴림픽 기간 경찰관 총 31명을 프랑스에 파견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 2월 올림픽을 안전하게 개최하려 각국 정부에 경찰력 파견을 공식 요청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46개 나라에서 경찰이나 군인이 파견되어 있다. 이 가운데 프랑스의 현장에서 안전지원팀으로 나서는 인원이 28명이다. 14명은 올림픽, 14명은 패럴림픽 기간 활약하고 있다. 두 경찰의 오른 어깨에는 태극기가, 반대쪽에는 ‘대한민국 경찰’이라는 글자 아래 프랑스 국기와 오륜기를 합친 로고를 부착했다.이번 파리올림픽 안전지원단은 한불 안전지원팀, 외교부 임시영사사무소, 프랑스 국제협력센터로 나뉘어 근무하고 있다. 한국일보 보도자료
2024.08.01 -
서울시 고가도로정책에 밀려난 문화재 독립문
1976년 서울시로부터 성산고가도로 공사이야기가 나온다. 이 공사계획을 계기로 독립문이 원래 위치에서 옮겨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위치 자체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주장도 팽팽하게 맞선다. 1978년 봄에는 이러한 논란도 멈췄다. 이전하지 않기로 서울시가 결정했단다. 문화재 위로 고가건설을 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같은해 12월에는 끝내 독립문이 옮겨지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1979년 고가도로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 독립문으로 북서쪽으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1980년 3월 지금의 위치로 이전되어 복원이 완성되었다. 서울에 고가도로가 유행처럼 건설되던 시절에 독립문이 있던 곳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서울을 청계고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고가도로를 해체했다. 그리고 독립문이 있..
2024.07.28 -
신라의 랜드마크, 황룡사7층목탑
1,400년전의 랜드마크였던 25층(82m)높이의 탑인 황룡사 7층목탑이 있다. 이 목탑이 최근 활요사복원정비사업단에 의해 디지털 재현이 되었다. 당시 국내외 주변국의 다양한 목조건축들을 해석하고 유추해 최종안을 택했다고 한다. 천 년왕도 역사 되찾기를 위해서는 1조원정도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황룡사는 신라가 사라진 뒤에도 고려시대까지 거대한 9층 목탑과 함께 남아 있었다. 그리고 황룡사에는 목탑 말고도 작은 쌍탑지가 있다. 황룡사 서편에 있는데 워낙 존재감이 없어서 묻혔다. 2중 기단을 갖춘 3층 석탑 두 개가 있었고 구황동 제2사지라 불린다.
2024.07.21 -
왜? 대형국기게양대를 만드려 하는가?
서울 광화문에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겠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혈세 낭비라고 이야기하며 반대하는 분위기인데, 서울시장과 서울시는 왜 국기게양대 건립을 고집하고 있을까?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를 만든다는 구상을 밝혔다. 서울 강북 구도심 한가운데를 국가 상징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단순히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사업이 아니라 정부도 참여하는 국가사업이다.과거 일제강점기 경성에는 남산에 국기게양탑이 있었다. 일제 이전에는 철당간이 있어서 국가나 지역을 상징하는 기를 올리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접어들자 황국신민화가 이루어지고, 일제는 주요 도시의 산에 국기게양대를 설치하였다. 1932년 경성과 개성에 대형 게양대..
2024.07.21 -
중앙아시아 보검이 신라에 나타난 이유
1973년 경주는 관광개발사업이 한창이었다. 5월부터 미추왕릉 지구(현 대릉원) 정화사업에 따라 옛 시청 앞에서 계림에 이르는 도로공사가 벌어졌다. 시멘트 배수관을 설치하려고 도로의 양쪽을 깊이 파내자 엄청난 무덤들이 노출됐다. 새롭게 확인된 무덤은 55기나 됐다. 이들 무덤에 1~55호까지 번호를 붙였다. 그 가운데 14호 무덤의 흔적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봉분은 이미 깎여 있었고, 그 위에 민가가 있었지만 파보니 돌무더기가 보였다. 1973년 경북 경주시 계림로 14호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보검’은 한눈에 봐도 이국적이다. 금 알갱이들로 테두리를 빼곡히 장식한 칼집 위로 빨간색 석류석이 박혀 더없이 화려하다. 하단에는 타원형 유리 장식을 붙인 흔적이 뚜렷하다. 이것과 비슷한 형태의 보검이 1928년..
2024.07.20 -
경북 봉화에 베트남 밸리를 구상하는 이유는?
한국과 베트남은 3천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다. 1009년 베트남에 독립적인 李(Ly)왕조(시조 李公蘊)가 들어섰다. 1174년 리왕조 대월제국의 제6대 황제였던 영종의 7번째 아들인 리똥떵(李龍祥)이 있었다. 리똥떵이 왕이 될 줄 알았으나, 리똥떵의 형인 제7대 고종이 죽자 제8대 왕이 된 조카인 혜종이 외척인 진씨 가문의 진수도에게 국정을 맡기면서 왕조의 몰락이 시작됐다. 진수도가 혜종을 협박해 황녀인 소성공주에게 양위시킨다음에 자신의 조카인 진태종과 결혼시켜 역성혁명을 일으킨다. 권력을 잡은 진태종은 쩐왕조를 건국하고, 진수도는 통국태사가 되어 전권을 장악한 후 리왕족 후손들에 대한 대대적인 살육을 하였다. 혜종이 사망하자, 쩐왕조를 만든 진씨가문은 리왕족들을 장례식장인 궁으로 불러 들여 살육하기 시작..
202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