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보검이 신라에 나타난 이유

2024. 7. 20. 20:05Report/City 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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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보로보예 보검-신라 계림 보검-신라 계림 보검 실제 모습

1973년 경주는 관광개발사업이 한창이었다. 5월부터 미추왕릉 지구(현 대릉원) 정화사업에 따라 옛 시청 앞에서 계림에 이르는 도로공사가 벌어졌다.  시멘트 배수관을 설치하려고 도로의 양쪽을 깊이 파내자 엄청난 무덤들이 노출됐다. 새롭게 확인된 무덤은 55기나 됐다. 이들 무덤에 1~55호까지 번호를 붙였다. 그 가운데 14호 무덤의 흔적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봉분은 이미 깎여 있었고, 그 위에 민가가 있었지만 파보니 돌무더기가 보였다.

14호 무덤의 흔적을 발굴 모습 , 주택가 도로다.

1973년 경북 경주시 계림로 14호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보검’은 한눈에 봐도 이국적이다. 금 알갱이들로 테두리를 빼곡히 장식한 칼집 위로 빨간색 석류석이 박혀 더없이 화려하다. 하단에는 타원형 유리 장식을 붙인 흔적이 뚜렷하다. 이것과 비슷한 형태의 보검이 1928년 카자흐스탄 보로보예(Borovoje)의 검의 파편(아래 우측 사진)에서도 나왔다.

카자스흐스탄 보로보예의 발굴품(좌측)과 신라 황금보검(우측), 2019년 1월 11일자 알마티 TV 보도자료

학계는 계림로 황금보검이 중앙아시아 혹은 흑해 연안에서 만들어진 후 신라까지 흘러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른 문명 교류의 발자취가 보검에 남아있는 것이다. 황금보검은 외래품(外來品)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 있다. 제작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흑해 연안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치는 어느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6세기 초 신라의 왕성했던 대외 교류의 상징물로 보는 것이다. 또한 그러나 중앙아시아산과 비슷하다. 장식하는 기법이 흑해 연안 노보체르카스크 시의 호흐라치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이나 이란 등 서역의 팔찌에서 확인되는 기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수입품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한반도에서 생산했던 유리구슬의 색깔이 신라인들이 좋아하는 색이라는 점, 발굴장소가 신라의 장례제도에 따랐다는 점 등에서다. 그래서 이 보검은 수입품이며 주인은 신라인이다 라는 주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함께 나온 토기와 허리띠 장식, 귀고리 등으로 볼 때는 6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보검만으로 봤을때는 5세기초로 보는 경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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