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된 활쏘기문화재

2020. 9. 20. 06:15Report/Martial Arts

728x90
반응형

활쏘기문화를 축소시켜 버린 국가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이런 나라도 없을 것이다. 자칫 일제강점기때보다 더 왜곡했다고 비난받을수도 있다.


인왕산 하산길에 황학정을 둘러 본 날이 대한궁도협회에서 무형문화재가 된 활쏘기(보사)에 대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을 운운하는 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그러나 황학정에서 필운동을 내려다 보며, 최근 활쏘기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되살아 났다. 어느순간 뚝딱뚝딱 지정되었으니 알수가 없었다. 여론을 최소화하기 위해 뚝딱뚝딱하기도 한다.

활쏘기는 당연히 지정되어야 마땅한데, 서두른감이 많다 보니 엉터리 등재라는 비난에도 자유로울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활쏘기를 하는 이들은 모르는 이도 많고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리랑과 씨름때와 다른 느낌이다. 택견때와 같이 억지 춘향이 모습이다. 각 국의 활쏘기판을 돌아본 경험으로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이유는 우리 활쏘기 문화가 변질되어 있고, 조직에 있어서도 의지와 응집력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활쏘기 단체들의 정체성도 문제이고, 보사(서서 쏘는 활쏘기)만 지정한 상태라 기사(말을 타고 활을 쏘는 활쏘기)나 편사(편을 나눠 쏘는 활쏘기) 등은 외면한 문화재 등재였다. 문화재 활쏘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다 같은 활쏘기가 아닌 셈이다. 이런 편향된 결정은 자칫 특정단체와 사람들의 아집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

우리 문화재 활쏘기가 절름발이 활쏘기가 되어 버린 모습이다. 보사와 기사는 활쏘기의 양수레바퀴와 같다. 보사라는 외바퀴로 이제는 유네쓰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겠다고 한다. 이미 터키는 보사와 기사를 함께 등재시켰다. 그 뒤를 이어 우리는 보사만 등재시키겠다는 것. 활쏘기로 유명한 민족이고 나라답지 않다. 일부에서는 보사만 하게되면 안되니 보사밑에 기사가 들어오면 안되냐는 어리석은 이야기도 나온다. 보사와 기사를 구분 못하는 수준이하의 엉터리들이 하는 말이다.

국가무형문화재 활쏘기는, 활 잘 쏘는 우리 민족을 스스로 축소했고, 어쩌면 보사만이 활쏘기문화재라 왜곡한 것이다. 활쏘기가 이러한데 다른 문화재 정책은 얼마나 엉터리일까?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유산들이 지정이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어리석은 정책때문은 아닐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황학정은 1898년 대한제국 고종의 어명으로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지었던 것을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이 자리는 원래 등과정(登科亭)이 있던 자리다. 황학정도 제자리로 가야하고 이 곳에 등과정이 다시 복원되어야 한다. 등과정이었던 이 자리는 한말까지 궁술 연습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서울에는 궁술 연습을 위한 사정이 다섯 군데가 있었는데, 필운동(弼雲洞)의 등과정(登科亭), 옥동(玉洞)의 등룡정(登龍亭), 삼청동(三淸洞)의 운룡정(雲龍亭), 사직동(社稷洞)의 대송정(大松亭), 누상동(樓上洞)의 풍소정(風嘯亭)으로, 그 위치가 모두 인왕산과 북악 사이에 있는 서촌에 있어 서촌 오사정(西村五射亭)이라고 하였다.

 

728x90
반응형

'Report > Martial A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린 좌와 우만 있다  (0) 2020.10.05
국기원장선거, 온라인 직선제 가능할까?  (1) 2020.09.22
무예정책의 모순(矛盾)  (1) 2020.09.19
50년전후 한국무예, 최용술을 공부하라  (2) 2020.09.17
조선경찰  (1) 2020.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