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파 논쟁은 비생산적이다
90년대 국내 무술도장의 파란을 일으켰고, 지금은 어느 무예보다도 안정기에 접어든 해동검도. 초기에는 검리(劍理)에 대한 논쟁과 역사성 문제에 대해 홍역을 치른바 있다. 그러나 최근 해동검도의 양산맥이라 일컫는 대한해동과 한국해동의 끊임없는 공방이 이루어지고 있다. 두 단체간의 갈등이 과연 수많은 해동검도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법한데 이에 대한 공방은 언제 끝날지 의문이다.
해동검도가 우리사회에 등장한 것은 25년이 지나 30년 가까이 접어 들고 있다. 그 과정에서 50여개가 넘는 유사 해동검도법인단체도 생겨났고, 이미 우리 곁에 해동검도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무술도장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지금 해동검도의 수뇌부들은 긴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해동검도는 그동안 외부와 내부의 갈등속에서 성장해 오고 있다. 여기서 외부의 갈등은 해동검도이외의 무술들이 바라보는 관점이고, 내부는 해동검도단체간의 논쟁이 그것이다. 해동검도가 초기에 등장했을 당시 기득권 검도단체에 의해 법정 소송에 이르렀고 이러한 소송 때문에 해동검도 초기 관계자들은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어렵게 협회를 이끌어 왔다. 이러한 논쟁은 ‘사이비 검도’라는 말까지 나오며 해동검도인들에게 사회적 고립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도 잠시였고 바로 내부에서의 논쟁이 이어졌다. 그것은 해동검도가 크게 성장하면서 시작된 갈등이자 논쟁이었다.
내부의 갈등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는 나한일총재가 대한해동검도협회를 탈퇴한 후 한국해동검도협회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대한해동검도협회 김정호총재와 함께 해동검도의 주류를 형성했던 나총재였지만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새로운 협회를 만들었고, 그 협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총재를 따라 일부 지도자들이 대한해동을 탈퇴하고 한국해동에 합류했다.
이러한 과정에 대해 분파니 조직의 갈등이니 하는 사회적 문제로 보기에는 해동검도가 성장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에 불과했다. 그러나 해동검도 내부에서는 지도자들과 수련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해동검도가 다른 무술들과 경쟁력있는 무술로 성장하는데 역시 비생산적일 수 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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