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예술대학과 국학대학

2025. 3. 3. 10:06In Life/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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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12.16.경향신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이 된 서바벌예술대학

서라벌예술대학(서라벌藝術大學, Seorabeol University of Arts)은 1953년에 개교한 대한민국의 예술대학이다. 1953년 서라벌예술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하였다. 1954년 1월에 1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56년에는 교사를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성북구 돈암동으로 이전했다. 이듬해 9월 초급 대학(지금의 전문 대학) 인가를 받아 서라벌 예술 초급 대학이란 이름으로 신입생을 받기 시작했다. 총 정원 300명에 문예창작학과 100명, 연극영화과 80명, 음악과 60명, 미술과 60명 정원이었다. 1964년에는 4년제 정규 대학 인가를 받아 서라벌 예술 대학이란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총 정원 700명에 문예창작학과 100명, 미술학과 100명, 연극영화학과 100명, 음악학과 100명, 신문방송학과 100명, 서예학과 100명, 동양미술학과 100명이다. 1961년 2월 대학원 설치 인가를 받아 확장하였다. 그 후 재정난으로 인해 학교법인 서라벌예술학원이 중앙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던 학교법인 중앙문화학원에 합병되었다. 1972년 10월에는 돈암동에서 동작구 흑석동에 위치한 중앙대학교 구내로 이전하였다.

돈암동에 지어진 서라벌예술대학

 

국학대학 설립취지는 좋았으나, 마지막에는 비리로 넘어간 대학이 되었다. 

 

국학대학은 1929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던 보명의숙(普明義塾)을 정봉현이 인수하여 1933년 화산보통학교(화산학원)를 설립한 것이 그 시초이다. 해방 이후 정봉현의 자손인 정의채가 같은 정씨집안 사람인 국학자 위당 정인보에게 민족교육기관 설립을 의논하였고, 위당이 이에 응해 국학(國學)이라는 교명을 정하고, 정의채는 재산을 기부하여 1946년 국학전문학교가 설립되었다. 1947년 11월에 국학대학으로 승격되었다. 국학대학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외솔 최현배, 이극로, 양주동 등 당시 한국 국학 연구의 대가들이 강단에 섰다. 특기할만한 점은 초창기에 정인보, 최현배, 양주동 등 연세대학교와 주요 교강사진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인보는 직접 한국학 강의를 하는 한편, 영남과 호남의 유림 부호들을 찾아다니며 학교 재정에 도움을 요청하고 다녔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위당 정인보가 납북되면서 이후 국학대학은 동력을 크게 잃은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연세대 출신 교수들이 교강사진의 상당수를 차지했었지만 6.25 때 연세대가 부산으로 피난한 반면 국학대가 대전으로 피난하여 서로 제갈길을 가게 되면서 거의 연이 끊어져 버린 것으로 보인다.피란 시기에는 대전 충남도청 부속건물에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1952년에는 문학부(문학과, 사학과)와 정경학부(정치학과, 경제학과)를 설치하였다. 1961년 11월 문교부에서 발표한 '사립대학정비기준'에 의해 4년제가 폐지되고 2년제초급대학으로만 재인가되었다. 1961년 말 새로운 학장이 취임하고, 1962년에서 1963년에 걸쳐 정릉에 새로운 캠퍼스를 마련하여 이전하였다. 하지만 이 즈음 대학인가 마저 정상적으로 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1963년 12월 국학대학이 문교부에 4년제 정규대학 부활을 신청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국학대학 정릉캠퍼스
정릉캠퍼스 신축공사

1963년 졸업식에서는 2백여명의 정식 졸업생 외의 1천여명에게 돈을 받고 졸업장을 발부했다는 의혹에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등 최악의 막장 학교로 전락했다. 1964년 신입생 모집요강을 보면 국문학, 영문학, 사학, 법률학, 경제학과 모집생을 각 20명 씩 4년제로 선발했고, 국문, 영문, 가정, 지역, 상, 행정, 원예, 체육, 관광과를 2년제로 선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5년 12월, 시설을 갖추지 못한 초급대학에 대한 정부의 폐교, 폐과 조치에 의해 지역, 관광, 체육, 행정, 국문과 각 80명 총 400명의 인원이 감축, 과는 폐과되었다.결국 1966년 3월 수도의과대학을 운영하던 학교법인 우석학원(友石學院)에 인수되어 1967년 2월 제17회 졸업생 배출을 끝으로 수도의과대학과 통합, 우석대학교(友石大學校)가 되었다. 학교법인 우석학원 또한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1971년 고려대학교에 합병되어, 국학대학의 역사는 최종적으로 고려대학교와 이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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