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의 최강자는 경운기다
2025. 2. 16. 11:04ㆍIn Life/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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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구중에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는 것이 있다면 '경운기(耕耘機, Cultivator, Rotary tiller)'일 것이다.
경운기는 농촌출신 사람들에게 추억으로 남긴 농기구다. 단순한 일하는 기계가 아닌 운동수단이자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며, 수확을 하고 이를 실어나르는 만능 농구기였다. 초기 괭이와 쟁기를 대신하여 논과 밭을 가는 보행 트랙터인 경운기는 1920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아서 클리포드 하워드가 발명하였다. 그 이후 자동화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동력 경운기가 알려지게 된 것은 1924년 동아일보 6월 5일자에 보면, 부산 동래군에서 ‘농업기구연습’을 제공한 가운데, 여러 농업기구중 ‘자동경운기’도 목록에 포함된데 있다. 그 이후 1957년 경향신문에 일본에서 자동경운기를 이용해 이익을 본다는 보도자료다. 그리고 이를 수입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기사다.
1960년대에는 정부의 농업 기계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경운기의 보급이 확산되었다. 1963년에는 국산경운기 제작을 알리는 보도자료(동아일보, 4.15일자)가 나왔다. 일본에서 도입되고 있는 경운기를 국산화하겠다는 것으로 대구아세아공업회가 진주대동공업회사가 제작한 국산경운기에 대한 성능비교를 통해 일본공업표준규격을 통과할 정도라는 내용이다. 당시 국산 농기구는 대공업제품만이 생산했었다.
1963년 국산경운기가 처음 등장했지만, 보급이 이루어진 것은 1965년이후다. 1966년 6월 20일자 매일경제에 경운기 사진과 경운기를 소개하는 보도자료가 나왔다. 그리고 1969년에는 아시아박람회에도 출품하게 된다. 1970년부터 정부는 농업의 기계화를 내세우며, 트랙터 국산화를 1979년까지 완료하겠다는 발표(경향신문, 1970.6.10.)를 하기도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기어가 1, 2단과 후진뿐이고 최대시속은 대충 20km쯤 되는 물건으로, 전기를 쓰지 않는 디젤 엔진에다 시동도 손으로 레버를 끼우고 세게 플라이휠을 돌려서 거는 구조였다. 그리고 농촌에는 이 구형 모델이 아직도 돌아다닌다. 1990년대 이후에 나오는 신형은 일반 자동차처럼 열쇠로 시동을 걸며, 1단 2단 3단 후진과 저속기어 고속기어로 총 4x2 8단으로 차별화의 길을 걷고 있다. 속도도 시속 30km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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