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낳아 놓고 키우지 못하는 막장 부모

2024. 11. 21. 21:40Report/e-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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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여기 e스포츠 분야에서 중국과 중동의 경쟁에 직면한 한국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것이 있다.

1999년 스타크래프트 경기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중계됐다. 그 이후 임요한과 같은 스타들이 등장했고 우리나라의 e스포츠는 성장 가도를 달렸다. ‘e스포츠’라는 명칭은 2000년 2월에 21세기프로게임협회(현 한국e스포츠협회) 창립식에 참여한 당시 문화관광부 박지원 장관이 축사에서 처음 언급된 용어다.

이후 e스포츠는 우리나라 주도로 전 세계인들에게 빠르게 확산 되면서 MZ세대들의 주류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우리나라 프로선수들이 스타급으로 부상하면서 한국은 e스포츠의 발상지라는 인식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2008년에는 국제e스포츠연맹(IeSF)을 설립하고 부산에 사무국을 설치하면서 세계e스포츠본부 국가가 되었다.

e스포츠가 세계인들에게 알려지던 당시에도 국내에서는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하 “게임산업진흥법”)’에는 단 한 조항으로 ‘e스포츠 진흥’이 라는 말이 있었다. e스포츠가 성장하면서 게임산업의 한 분야로만 인식될 것이 아니라, 좀 더 체계화시켜 세계 속의 한국형 e스포츠를 보급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e스포츠진흥을 위한 법률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주무부처는 소극적이었다. 수 년간 여야 의원들이 노력한 끝에 2012년이 되어서야 ‘이스포츠(전자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e스포츠진흥법”’를 제정되었고, 같은 해 시행됐다.

그러나 막상 이 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정부는 기존 법률에 게임 개발 심의와 셧다운제 등 규제정책만 강화했었다. 다른 국가들이 진흥정책을 펼치는 것과는 달리 규제정책을 펼치며 e스포츠 진흥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강유정 의원의 질의를 통해 중국이 국제표준화기구(ISO)에 ‘게임 e스포츠 용어 표준화’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국제표준화기구에 제출된 이 제안서에는 e스포츠의 정의부터 경기 방법, 주최자, 장비 용어 등 세부적인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중국은 e스포츠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ISO문제는 이미 2020년 국정감사에서도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었다. 그러나 주무부처에서는 표준화 업무는 국가기술표준원 소관이라는 이유로 책임회피를 하였고, 연구용역의 필요성도 제기되었으나 예산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된 사실이 이번 국감을 통해 알려졌다. 중국은 지난 수년간 연구하고 검토한 후, 지난 1월에 국제표준화기구(ISO) 기술위원회(TC83)에 'e스포츠 표준화 제안서'를 제출했다. TC83은 e스포츠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은 위원회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지난 5월에는 35개 회원국의 투표를 거쳐 중국의 제안서가 채택되었으며, 동시에 7월에는 중국 주도로 ISO 내에 e스포츠 워킹그룹(WG12)을 설립 했다. 결국은 WG12의 의장 자리까지 확보하며 표준안 작성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여기에는 아시아 최대 e-스포츠 기업으로 최근 ‘Hero Esports’로 브랜드명을 변경한 VSPO가 ISO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9월에 개최된 아시아 최초의 국제종합e스포츠대회인 e스포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경기에서 VSPO가 미래의 클라우드 기반 몰입형 가상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벤치마크를 설정하기 시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ACL은 아시아 전역의 여러 핵심 국가 및 지역에 e스포츠 경기장을 설립하여 지역 간 및 혁신적인 XR 게임 경쟁 영역을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e스포츠 시청자에게 전례 없는 수준의 몰입감과 상호 작용을 제공하여 e스포츠 경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는 계획이다. 이들에게 IOC의 지지는 더 큰 힘을 주고 있다. IOC 부위원장 응세르미앙이 이 대회 기간 동안 전 세계 e스포츠 선수들과 함께 이번 서밋에 참석해 중국과 아시아 전역의 e스포츠 생태계의 추가 성숙과 발전에 대해 논의하고, 202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되는 첫 올림픽 e스포츠 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움직임과 더불어 e스포츠는 중국 주도의 다각화와 세계화 전략이 중국내 게임산업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국제 무대에서 중국 게임의 위상과 함께 글로벌 e스포츠 시장을 주도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로서는 게임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올 3분기에 중국 e스포츠 부문의 실제 매출액은 전 분기 대비 중국 모바일 게임과 중국내 시장 자체 개발 게임이 e스포츠분야는 7조원 규모로 세계 최대 e스포츠 시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중국 정부가 새로운 소비와 경제 성장의 정책을 통해 e스포츠 산업을 강력하게 지원해 온 데 있다. 돌아보면, 한국 e스포츠업계가 주축이 돼 2008년 설립한 국제e스포츠연맹(IeSF)은 2018년까지 한국 협회장 체제로 운영됐다. 이 후 사무국은 부산에 두고, 남아공, 미국 출신 회장을 맡았다. 이 시기부터 우리 정부는 e스포츠 국제적 활동에 대해 소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종목이 채택되면서 중국과 중국e스포츠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파이살 빈 반다르 사우디e스포츠&마인드스포츠연맹 회장이 IeSF 회장을 맡으며, 국제연맹 역시 사우디 아라비아가 장악했다. 심지어 사우디 아라비아는 IOC 공인 'e스포츠 올림픽'과 관련하여 향후 12년 동안 실질적인 올림픽e스포츠 주도 국가로 나선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디비전 2030’의 전략으로 e스포츠를 육성하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의 e스포츠올림픽 협약을 했다. 여기에 아랍에미레이트(UAE)는 아부다비에 e스포츠 섬을 건설해 전세계 e스포츠 교육과 경기장을 사용하면서 e스포츠의 허브를 꿈꾸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들이 e스포츠를 반짝 운운하며 젊은 세대들을 공감하는 냥 손짓을 하다가도,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외면해 오고 있다. 정치권도 e스포츠의 문제에 대해 여야 가릴 것 없이 책임에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주무 부처의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했다. 담당부서가 게임과 e스포츠를 한번에 담당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과 인력은 가장 큰 문제다. 이미 e스포츠를 전담할 조직부터 외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e스포츠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 세계로 진출하거나, 국제적 지위가 있는 단체나 기구를 지원할 법적 근거가 국내법에는 없다. 그렇다고 해당 관계법을 개정하려 하면 주무 부처에서 거세게 반발해 왔다. 지난해 전통무예진흥법 개정에서도 그랬고, 각 지자체들이 국제기구를 유치하려 해도 근거법이 없어 조례에 의존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태권도 역시 세계태권도기구인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WT)에 대한 지원 근거가 없어, 대표자가 바뀌면 사무국도 한국을 떠나야 할 처지다.

우리가 낳아 놓고 육성하지 못할 정책적 환경이라면 다른 나라로 보낼 수밖에 없다.e스포츠도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국제관계가 아니더라도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e스포츠 정책은 지원보다는 민간에 의존해 왔으며, e스포츠 시장에 대한 분석도 소극적이었다.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UAE가 돈이 많아서 e스포츠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e스포츠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다.

사우디2030의 비전에 e스포츠는 2030년까지 GDP에 133억 달러 추가와 일자리 39,000개 창출을 예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는 e스포츠를 낳아 놓고 기르지 못하겠다고 버티면 막장부모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e스포츠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와 e스포츠계가 머리를 맞대고 e스포츠 탄생국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방안을 찾을 때다.

출처 : 시사매거진(https://www.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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