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 야구부가 해체된 이유

2021. 1. 24. 22:13Report/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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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경기고와 선린상고의 대결에서 선린상고 투수 최운식의 사망사건이 있었다. 최군은 3회말 공격에서 빈볼로 후두부를 맞아 기절하였으며, 6회까지 경기를 하다가 계속 쓰러져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시간만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실제 야구장에서 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숨진 사례가 있다. (동아일보 1955년 7월 7일자). 당시 부상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한 생각을 한 지도자들과 협회가 한심했던 시절이다.  

이 사고이후 경기고 야구부는 해체되었다. 1976년 다시 창단되었다. 황성 YMCA 야구단은 미국인 선교사 아래에 미국의 야구를 도입했다면, 경기고는 일본인 교사로 부터 일본식 야구를 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야구공의 위험성은 항상 노출되어 있다. 최근 일반 공원에서 야구공을 주고 받는 이들이 많다. 어린 아이들부터 어르신들이 공원을 나와 그 공에 맞으면 큰 부상을 입기마련이다. 그러나 던지는 자와 받는 자는 항상 자신이 있어보인다. 과거 보라매공원에서 이런 장면을 많이 보았다. 간혹 순찰요원과 경찰까지 와서 주의를 당부하지만 순간뿐인 것으로 안다.

야구는 야구장에서 축구는 축구장에서 해야 한다. 

 

  • 1920년 레이 채프먼, 빈볼에 두개골 골절(헬멧 없었음
  • 1955년 선린상고 야구부 소속 최운식 빈볼 후두부 부상 사망
  • 광대뼈 함몰 둥 부상자 : 이종범, 김상현, 김선빈(이상 KIA), 심정수(현대), 조성환(롯데), 이종욱(두산), 배영섭(삼성)이 광대뼈 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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