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화쟁(和爭)

2020. 8. 30. 03:53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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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마음(和)과 다투는 마음(爭)은 같은 짓이다. 같은 마음이지만 놓여지는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두 마리의 강아지가 재미있게 놀고 있지만, 공복을 느끼고 굶주림을 참고 있을때 한조각의 고기를 놓으면 다투게 되고 사투(死鬪)까지도 간다. 인간은 이것을 조정하는 지혜가 있다. 하지만 인간도 그 조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동양의 많은 성인들과 교육학자들이 언급해 왔다. 특히 위의 '화쟁和爭'과 같은 이야기는 원효대사가 많은 종류의 불교를 통합한다는 비전을 가지면서, 불교종파의 다양성을 통합시키는 과정으로 불렀다.
‘화(和)’는 조화, 통일을 뜻하고, ‘쟁(諍)’은 싸우고 토론한다는 뜻으로 싸움을 화해시킨다는 의미이다. 한번 和가 깨져서 다투는(爭) 처지가 되면 궤도(詭道, 속이는 방법)로서 손자와 오자(孫誤)의 병법(兵法)이 논의되면서 전쟁론(戰爭論)이 논의되었다. 여기서 무예는 폭력을 전제로 대처하는 기술이었다.

일본 에도시대에 죽음(死)의 윤리라는 무사도는 종교적 내성과 자각을 동반하면서 선(禪, zen)불교 사상 등의 영향을 받아 밖으로 향하던 대립과 경쟁의식을 스스로의 마음으로 가져오는 노력을 했다. 극기복례의 무사도로 전환된 것이다. 이처럼 에도시대 일본무도는 평화의 무예로 전환된 시기다. '無刀(군자의 검)'라든가? 잇토류(一刀流)가 '무토류(無刀流)로 변경한 일이라든가, 유명한 유파 유술들도 상대를 무너뜨리거나 누르기 기술로 발달시켰다.
'산속의 적은 제압하기 쉽고, 마음 속의 적은 제압하기 어렵다' 이 말은 기술을 통해 도(道)에 이른다는 무도의 긍지이고, 신무불살(神武不殺)이며, '和의 무도'를 말한다. 이 당시 유파의 수장들은 기존 선승들이 선(禪)의 깨달음을 얻어도 기술이 통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고 보았다. 기술에 입각해 도(道)에 이르는 무도 수행의 독자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기술(waza)은 무술의 형(型)을 말한다.

에도시대중기에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겨루기시합은 금지되었다. 이러다 보니 형만 수련했다. 그러나 검도는 죽도연습, 유도는 메치기와 굳치기로 자유연습법이 발명되면서 무예의 경기화가 시작되었다.

무도(Budo, 일본무예)가 형과 겨루기 시합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유도의 경우 올림픽 스포츠가 되면서 유도인들은 형을 잃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유도의 가타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요새 국내 무예계에서 일고 있는 和爭도 근본은 여기에 있다.

......
和의 무예는 일본의 아이키도에서 추구하는 철학이다. 그러나 이 和는 이미 에도시대 무예에 등장한다. 좀 더 자세한 이해를 위해 와세다대 무도철학 교수인 시시다 교수의 최근 글이 있다. 그가 2016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의 창건과 관련해 정리된 원고를 보내왔다. 그의 무도철학인 '和'에 대한 이야기다. 미래 무예는 세계인이 평화를 추구하는 '和'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원고는 일본의 월간 무도에 기고됐다.

시시다교수의 원고내용은,
https://martial-arts.tistory.com/entry/%ED%8A%B9%EB%B3%84%EA%B8%B0%EA%B3%A0-%EC%8B%9C%EC%8B%9C%EB%8B%A4-%EA%B5%90%EC%88%98%EC%9D%98-%EB%AC%B4%EC%98%88%EC%97%90-%EC%9E%88%EC%96%B4%EC%84%9C%EC%9D%98-%E5%92%8C%EC%9D%98-%EC%B0%BD%EC%A1%B0

[특별기고] 시시다 교수의 '무예에 있어서의 和의 창조'

일본 와세다대학교 스포츠학술원의  후미아키 시시다(Fumiaki Shishida)교수가 2016년 세계무예마스터십 개최기간에 기조강연 <무예에 있어서의 和의 창조>라는 주제의 글이다. 그리고 이 글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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