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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이론도, 체육학 이론도 아닌 모호한 무도이론이 혼란 가중
우리 주변에 대부분의 무술교재를 보면 일반 서구체육교과서와 다를 바 없다. 마치 체육의 가치로 표현되고 있는 부분이 태권도의 가치가 되어 있고, 검도의 가치가 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체육과 무술에 대해 별다를 바 없다는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서구스포츠의 비대가 가져온 우리 무술계에 마치 서구스포츠처럼 무술이 돼 주기를 바라는 듯한 내용이 해방이후 모든 무술교본에는 나온다. 과연 무술과 서구스포츠가 동일한가?
대학에서 무술을 전공해도 실기만 무술이지 이론은 온통 서구체육학 이론으로 포장되어 있다. 이런 교과과정의 웃기는 모습 덕(?)에 지금 일선 지도자들은 현장에 나와 무술이론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체육학을 지도하고 있다. 겉모습만 무술이고 속내는 서구체육학으로 차 있는 모습이다.
“무술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하면, 체육의 가치와 다를바 없고, 서구스포츠의 가치와 다를바 없는 모호한 짜집기 이론들로 설명한다. 신체적 가치, 정신적 가치, 사회적 가치로 표현된다. 어쩌면 아주 단순하게 넘어갈 지 모르겠지만, 지금 서구사회에서는 분명 동양과 서양의 신체관이 다르다고 해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무술과 서구 스포츠가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禮)를 지도한다”라는 답변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서구스포츠에서 이야기는 ‘manner’는 예의가 아니란 말인가? 꼭 머리를 숙여야 예의다라는 사고는 우리만의 예법을 강조하는 고집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호신술인가? 동양무술만 호신술이 있고, 서양스포츠에는 호신술과 같은 기법이 없단 말인가? 그럼 레슬링은 어떻게 보아야 할 까?
이처럼 우리 무술계는 지도자들에게 충분한 이론을 제시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 무술과 스포츠가 뭐가 다른가? 하면서 말이다. 일선 지도자들이 자신있게 학부모나 수련생들에게 알려 줘야함에도 침묵을 지켜야 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도장에 수련하고 있는 수련생을 둔 학부모들에 던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자식을 도장에 보내는 이유가 ‘체력단련’에 있다고 답변하는 경우가 80%가 넘는다. 체력이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저희 무술을 하면 키가 큽니다” . 우리 도장사(史)에서 지금까지 이 말처럼 훌륭한 마케팅(?)소재는 없었을 것이다. 무조건 키크면 좋은 운동일거라는 우리 학부모들의 열등감때문에 도장마저도 키 키우는 도장으로 변하게 한 것이다.
또한, 국가기관이라고 하는 대통령경호실에서 조차도 “왜 경호원들이 무술을 합니까? 사격하고 영어만 잘 하면 되지. 지금 총이 있는데 뭐하러 무술을 합니까?” 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도 일부 경호관련학과의 지도자들은 “경호를 하려면 무술을 해야 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무술은 필요합니다”라고 답한다. 총알도 피하는 훌륭한(?) 술기만을 강조하면 된다는 모호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우리 무술계는 다양한 질문과 어설픈 답변속에서 살아 간다. 이런 문제는 곧 무술이론의 부재현상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무술관련협회에서 시행하는 지도자연수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당연히 이러한 이론들을 접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도 되지 않는 이론들로 지도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지도자 강습회에 참가한 지도자들은 도대체 뭘 지도했는지 의미조차 없어 형식에 치우친 교육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사범이라는 무술계의 칭호 사라지고, ‘코치’라는 용어 사용할지도
그렇다면 대학에서는 어떨까? 무술관련학과가 있는 대학마다 ‘무도론’이라는 과목이 있다. 사실 무도관련학과 학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전공개론 과목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 무도론의 내용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체육원리’와 동일한 과목처럼 알고 있거나, 각 종목별 역사를 조사해 발표하는 수준, 우리나라 장군에 대한 인물조사, 조금 한다고 하면 지금은 별의미 없는 1960년대 일본세미나 자료를 답습하면 되는 줄 알고 있다. 이렇다보니 무도에 대한 기초지식이 되어야 할 과목도 형식에 치우쳐져 시간 떼우기식 수업에 연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그것은 해방이후 서구스포츠의 굴레에서 무술이 천대받고 있는 실정에 오로지 경기화를 위해 스포츠로서의 무술로만 고민한 했기 때문이다. 마치 대한체육회에 가맹이라도 되면 최고의 무술인냥 생각했으며, 전국체전에 정식종목이라도 채택되면 최고의 목표가 달성되는 줄만 알았다. 이렇다보니, 무술의 본질은 온데 간데 없고, 경기규칙을 만들고 온갖 경기대회를 만들어 ‘결과중심의 스포츠’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결과로 지금에 와서는 스포츠과학으로서의 무술을 해석하려는 연구가 지배적이며, 경기력 향상이라는 연구에 치중되어 있다. 이렇다 보니 무술에 대한 독창적인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채 뜬구름만 잡는 꼴이 되었다.
무술도장이 체육관으로 변신했고, 무술사범은 ‘코치’라는 명칭으로 불러야 할 처지가 돼 버렸다. 무술은 서구스포츠계에 대안적 소재로 1960년대 이후 부터 등장했다. 심지어 국내 몇몇 무술학계 사람들은 대안적 소재가 아니라, 이제는 ‘대항적 학문’으로 가야한다고 외치는 마당에 우리 무술계는 아직도 스포츠와 88올림픽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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