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우치다(内田) 도장을 추적한다
2024. 7. 31. 13:12ㆍ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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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사진은 1898년 명동성당의 모습이다. 서울에 우뚝 솟은 성당의 모습은 지금 빌딩으로 뒤덮힌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명동성당 부근은 일제강점기에 '메이지초(明治町)'였다.
조선시대에 한성부 '명례방(明禮坊)' 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남촌이라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明'이라는 글자를 쓴다 해서 일본 왕의 이름을 따 '메이지초(明治町)'가 되었고, 해방이후 밝은 고을이라는 이름으로 '명동(明洞)'이 되었다.
충무로와 명동은 일본인들이 주거하던 집성촌이자 상업지구였다. 두번째와 세번째 사진이 일제강점기 명동성당 부근의 일본 가옥들이다. 이 곳의 과거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흑룡회의 우치다 료헤이(内田良平)가 러시아와 조선에 들어와 우익활동을 하며, 이 곳 명동에서 유도장을 개설했기 때문이다. 조선에 들어오기전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유도장을 개설해 놓고 일본 첩보원들의 활동기지로 제공했다.
그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자 21살 나이에 조선에 들어온다. 우치다는 조선병탄을 위해 민간인 신분으로 조선에 들어온 우두머리로 조선의 친일파를 지원하고 배후 조종했다. 우치다 도장을 추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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