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에 베트남 밸리를 구상하는 이유는?

2024. 7. 20. 15:37Report/City 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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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베트남은 3천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다.

1009년 베트남에 독립적인 李(Ly)왕조(시조 李公蘊)가 들어섰다. 1174년 리왕조 대월제국의 제6대 황제였던 영종의 7번째 아들인 리똥떵(李龍祥)이 있었다. 리똥떵이 왕이 될 줄 알았으나, 리똥떵의 형인 제7대 고종이 죽자 제8대 왕이 된 조카인 혜종이 외척인 진씨 가문의 진수도에게 국정을 맡기면서 왕조의 몰락이 시작됐다.

진수도가 혜종을 협박해 황녀인 소성공주에게 양위시킨다음에 자신의 조카인 진태종과 결혼시켜 역성혁명을 일으킨다. 권력을 잡은 진태종은 쩐왕조를 건국하고, 진수도는 통국태사가 되어 전권을 장악한 후 리왕족 후손들에 대한 대대적인 살육을 하였다. 혜종이 사망하자, 쩐왕조를 만든 진씨가문은 리왕족들을 장례식장인 궁으로 불러 들여 살육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리 왕족과 종친이 멸족했지만, 당시 52세이던 리똥떵(李龍祥)은 살아 남아 도망쳤다.

송나라로 도망치려하였으나 바다에서 표류하다 도착한 곳은 황해도 옹진군 화산포다. 옹진에 들어설 무렵 해적을 만났다. 그 해적들은 고려인들을 납치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리똥떵 일행은 해적을 쫓아내고 옹진사람들을 구해 온다. 옹진에 들어와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이 소식이 조정에 알려져 당시 고종(1213-1259)은 이들을 조사케 했다. 필담을 통해 리똥떵이 한자를 구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베트남은 한자문화권이었기 때문이다.

안남국(베트남)의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고려 조정은 그들에게 성씨를 하사했는데, 그것은 ‘화산 이씨’다. 그들이 도착한 화산포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화산 이씨의 성씨하사에 또다른 주장도 있다. 그것은 1253년 몽골군의 5번째 침략때 옹진현령에게 대적하는 법을 가르쳐 전쟁에서 승리해 성씨를 하사받았다는 이야기다. 한국에는 리똥떵의 후손들이 8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리똥떵은 왕족이라는 자만에 빠지지 않고 어린 아이들에게 무술을 지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베트남 정부와 국교정상화가 되었다.

베트남정부는 13세기 멸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왕족 후손들이 한국에서 상당한 가문을 이루며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리왕족의 후손을 공식 인정했다. 이를 계기로 베트남은 화산 이씨들이 베트남에 올 경우, 원한다면 베트남 사람과 똑같은 세금, 사업권 등의 대우를 하고 있다. 지금 국내에는 경북 봉화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베트남에서 Ly왕족들은 '응우옌'(阮)으로 성을 바꾼 채 목숨을 보전해 살아왔다. 베트남인의 38%정도가 이 성을 가지고 있다. 왕조가 멸망될 때마다 이 성으로 바꾼 왕족들이 많다. 이렇다보니 같은 영어권에서는 서로 친척관계가 아니라는 글을 남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김해김씨와 경주김씨는 다르다는 것처럼 본관이 같지 않으면 서로 다른 성씨처럼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팩트체크

1. 이승만 전대통령은 화산이씨가 아니라 전주이씨다.

2. 베트남에서는 보트피플의 시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농담이다.

3. 정선이씨와 같은 손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엉터리 가설이다.

4. 화산군(花山君)의 화산(花山)은 황해도 금천군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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