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의 유일한 사진
2024. 5. 15. 07:47ㆍIn Life/人
728x90
반응형
조선총독은 행정, 입법, 사법권을 모두 장악한 전제군주였다. 그리고 군인신분의 헌병이 칼을 찬채 경찰업무를 수행하는 헌병경찰제도를 시행했다. 외국의 시선을 의식해서였는지 서울에만 경무총장을 두고, 각 도에는 헌병대장이 경무부장(지금으로 따지자면 지방경찰청장)을 겸직한 셈이다.
경찰서장과 직무취급자에겐 3개월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그리고 벌금 100만원이하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여기에 태형까지 할 수 있게 했다.
일제는 매국노들과 각지의 양반 사대부들에게 은사금을 주어 회유하는 한편, 일반대중들에게는 태형으로 위협했다. 은사금을 받고 날뛰며 좋아하는 사대부도 있었지만, 이를 거부한 사대부들도 있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사대부들도 있었다. 이러한 존재가 강한 힘을 만든다. 여기에 온가족이 재산과 가진 모든 것을 바쳤다면 더할나위 없다.
이회영 집안은 삼한갑족, 삼한고가로 불리는 명문가였다. 이회영과 집안이 나섰다. 그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충북 진천출신 이상설을 독립운동근거지 건설을 위해 추천한다.
이회영의 유일한 사진이다.
728x90
반응형
'In Life > 人'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폭과 아줌마의 공통점 (0) | 2024.06.30 |
---|---|
사회에서 형님과 동생의 관계 (1) | 2024.06.30 |
졸부의 샘플, 김갑순 (0) | 2024.04.14 |
아침창 김창완 하차 (0) | 2024.03.23 |
자식과 대화가 가능한가? (0) | 2024.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