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 16:01ㆍIn Life/Worldly Truth
김원경(金元慶, 1898~1981)은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1919년 3·1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동년 4월에 최숙자, 김희옥 등과 함께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애국부인회의 특사로 상해에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동년 9월에 혈성단과 통합하여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이화숙을 회장에 추대하고 김원경은 부회장이 되었다. 1920년 11월에 상해 대한인거류민단이 조직되자 그녀는 최창식과 같이 서구 의원에 뽑혀 교민 복지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22년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회의에는 권애라와 같이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각국 대표에게 대한민국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김원경은 함께 활동하였던 최창식과 결혼하여 임정의 뒷바라지를 계속하였다. 하지만 1930년 4월 최창식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20년에 걸친 독립운동 활동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33년 출옥했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각기병이 생겨 거의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아내 김원경이 1941년부터 상해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부부는 해방 이후에도 1957년 최창식이 사망할 때까지 상해에서 머물렀으며 이후 마카오, 홍콩 등을 거쳐 1960년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했다. 1981년 김원경도 별세했고, 부부는 1986년 8월 27일 서울 국립현충원에 나란히 안장됐다.
이현아 한국이민사박물관 학예연구사(재외동포신문)의 글을 재구성함.
'In Life > Worldly Truth'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험을 챗GPT로 본다 (0) | 2024.06.29 |
---|---|
일본 '무사도'가 대단하다고? (0) | 2024.05.23 |
일제강점기, 하세가와(長谷川) 지명은 조선총독 이름 (0) | 2024.04.18 |
난세에 영웅난다 (0) | 2024.03.03 |
1919년 조선26대 국왕 고종의 장례행렬 (2) | 2024.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