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 유술도장이 있었다
2024. 1. 23. 11:02ㆍ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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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까지(현재까지의 기록) 명동에 유술도장이 있었다.
1930년 경성에는 '유술柔術'이라는 명칭보다는 '유도柔道'로 사용했다. 그런데 1930년 신문광고에 명동의 파출소입구에 있던 '양무관 유술 도장'에서는 '유술'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유술도장에서 뼈와 관련된 치료를 하는 접골원이 아니었나 싶다. 과거 유도 4단이상은 접골사 자격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도 법률은 남아 있으나, 1960년대말부터 시행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왜 유술도장이라고 했을까? 19세기말 가노지고로가 니혼교 부근 도장을 방문했을때의 분위기일까?
이 광고는 줄기차기 1924년부터 1932까지 여러 신문에 나온다. 원래 병원자리를 인수한 모양인데, 요즘의 접골원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맞을지는 좀 더 분석이 필요하다. 이유는 병원과 유술도장의 관계가 풀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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