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9. 15:43ㆍReport/Martial Arts
일제강점기 가라테 한국인은 누가 있을까.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의 강창수(姜昌秀, 일본명 나카무라 히데오中村日出男),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學)의 조영주(曺寧柱), 최영의 (崔永宜, 오야마 마스타츠大山倍達) 등이 재일 한인 공수도의 인물들만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조영주는 나와 깊은 연이 있어, 추후 다루기로 하고, 일본 주오(中央)대학에서 병리학을 전공한 윤쾌병을 알아본다.
원래 이름은 윤희병(尹曦炳)으로, 미군정하에도1945년 일본에서 한무관(韓武館)을 창설하였다. 일본인이 아닌 이유였기에 가능했다. 지금 전일본공수도연맹 렌부카이(鍊武會)다.
국내에 돌아온 윤쾌병은 조선연무관에서 가라테를 지도했고, 부산에 지도관을 개관했다. 1950년부터 서울대 수의대, 건국대 축산대에서 교수를 역임했으며, 1969년부터는 한국야쿠르트사를 경영했다.
윤쾌병은 일본에서 미군정하에서 호구를 차용해 겨루기를 시도했다. 귀국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태권도의 통합과정에서 갈등이 있었으며, 지도관내에서도 갈등이 생겼다. 그는 한국 야쿠르트를 맡으며 무예계와 멀어졌다.
조영주(曺寧柱, 1908 또는 1913~2001)
조선인으로 일본무덕회 강유류 剛柔流 공수 9단 범사다. 유도, 권투, 가라테를 수련한 격투가이자 무도인으로 불린다. 동아연맹의 회원이었고 민단 단장도 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형인 박상희와 친구이며, 민단을 함께 만든 박열의 경성보통고 10년 후배다. 총검술 호구를 변형해 가라테 시합 보호장비를 고안했다.
태권도의 겨루기와 호구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미군정기 일본에서 조선인 사범들에 의해 검도호구에서 차용하기 시작해, 국내 태권도에 그대로 유입된 것이다.
1961년 전국체전 태권도 호구는 검도호구다. 왜 일본에서는 총검술 호구라 하고, 전국체전에서는 검도호구일까요? 또 조영주는 최배달에게 강유류 가라테를 지도한 스승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최배달의 기록에서 조영주가 지워지기 시작한다. 무슨 이유가 있을까?
* 조영주에 대한 인물기사들이 있다. 댓글로 알려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조영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주소를 클릭해 열람할 수 있다.
https://note.com/gbd/n/ne3bf2f83ae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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