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신사리와 봉사리는?

2021. 5. 11. 11:30Report/City 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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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와 2000년대 봉천사거리모습이다. 80년대초 중학생시절 2호선 전철이 생기고 고교시절 개통돼 가 본 신림사거리는 극장과 볶음순대가 밀집된 좌판시장이 있었다. 고교시절 우린 간혹 신림사거리를 신사리, 봉천사거리를 봉사리라 부르며, 늘어나는 상권을 보았다. 여기도 신촌처럼 될거라며 미래를 예측했던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럴리 없다며 둔한(?)이들도 있었다.

대학생, 구로공단의 근로자, 강남 셀러리맨들에게 신림사거리는 휴식공간이었다. 대학시절 이 곳에서 일찌감치 장사를 하던 친구들은 이야기했다.

"신림사거리 4블럭은 상권을 찾는 이들이 다르다. 한 블럭은 대학생과 젊은이들, 다른 한 블럭은 청소년들, 다른 한 블럭은 중년 남성들, 마지막 한블럭은 중년 여성들이다. 이들이 저낵을 먹고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은 하나다. 한 가족이 서로 각기 놀고 간다"

그러나 지금 신림동은 숙박시설들이 원룸과 오피스텔로 전환되면서 역세권 주거지로 변하는 블럭, 먹자골목으로 굳히는 블럭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70년대 봉천사거리(봉사리)
70년대 신림사거리부근(신사리)
70년대 신림사거리
지금의 신림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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