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밖 '경기'지명은 왜?

2021. 1. 3. 22:40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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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안산기슭을 걸어서 서대문형무소 뒤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 인왕산으로 넘어가는 하늘길을 통해 걸으면 항상 이 그림을 생각하곤 한다. 중국사신을 맞이한 슬픈 역사도 있었고, 무과시험도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 형무소를 비롯해 각종 시설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대 일보무도가 유입되어 일제강점기 종로바닥에서 유행하다가, 해방이후 이 부근으로 옮겨져 최근까지 이런 저런 도장들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왕산과 종로, 그리고 이곳 서대문사거리에서 독립문사거리 부근까지가 무예보물창고인지도 모른다. 가끔 공원과 시장의 토박이 어르신들은 무예이야기를 하곤 한다.

1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작자미상의 '경기감영도'다. 서대문(돈의문)밖의 세상을 그려놓았다. 멀리 인왕산과 안산도 실감나게 그려져 있고, 경기감영의 핵심건물인 현재의 서울적십자병원과 더불어 이화여고, 경찰청, 그리고 북서쪽으로 서문대형무소자리인 현 독립문공원, 천연동, 영천사장부근, 충정로 일대 등이 잘 나와 있다. 특히 서대문형무소자리를 중심으로 독립문공원에서 영은문(독립문자리), 활터인 읍승정 등에서 활쏘기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잘 표현되어 있다. 아마도 무과시험이 치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무과라면 경기감영에서 실시한 향시가 아니었을까?

서대문과 종로의 경계인 서대문사거리와 독립문사거리까지의 조선후기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지금 경기대학교와 경기초등학교, 또 과거 경기고등학교가 왜 '경기'였는지는 이 때문이다. 이 정도면 해방이후에도 '경기'라는 말이 자연스러웠지 싶다. 지금 생각하는 경기와는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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