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5. 09:08ㆍReport/Martial Arts
우리나라에 권투가 소개된 것은 1912년 10월 7일 단성사의 박승필이 '유각권(柔角拳)구락부'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여기서 유각권이란 유도, 각저(씨름), 권투를 말한다. 최초의 무예연합단체이다. 그러나 이것은 종목별 연합회라기 보다는 '구락부', 즉 클럽이었다. 그래도 처음 3가지의 무예를 복합해 클럽을 만든 장본인은 박승필이다.
현대 유도와 흡사한 것은 아니나 박승필이 순전히 흥행을 목적으로 사양사람의 권투, 일본사람의 유도, 한국사람의 씨름 을 대결시키는 유각권시합을 자주 가졌던 것이 복합종목의 하나로 열렸다는 주장도 있다. 1920년 6월 20일 밤 경성공회당에서 배풀어진 유각권시합에 우리나라 씨름꾼이 쓰러지면 분개한 관중들이 뛰어 올라가 싸우는 바람에 난장판이 됐다고 한다(이규태, 1988).
유각권의 흥행의 핵심은 일본 유도선수를 처절하게 패배시킴으로써 잠재된 울분을 분출시키기 위함이요, 그래서 단성사의열기는 일본 관헌이 개입하려 들었으리만큼 고조됐었다. 한국 씨름선수가 일본 유도선수에게 패배당하면 관중석에서 뛰어나와 대들곤 했던 민족 수난사의 한 존재방식을 단성사가 감당했었다.
또한, 박승필은 흥행성을 위해 권투, 유도, 씨름 세경기를 혼합시킨 유각권구락부에서 점수제로 심판을 하였다. 이 유각권시합에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 인도 등지의 권투선수, 레슬링선수, 일본의 유도선수, 한국의 씨름선수들이 출전해 좌충우돌하여 장관을 이루었으며 흥행도 성공시켰다.
박승필은 복합경기만 개최한 것은 아니다. 조선씨름협회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씨름대회를 개최했다. 1912년10월에는 柔角俱樂部(유각구락부)주관 씨름대회가 團成社(단성사)에서, 1915년에는 光武臺(광무대)주무인 朴承弼(박승필)주관의光武臺(광무대)씨름대회가 음력 1월3일부터 일간 광무대극장에서 개최된바 있다. 1912년 박승필의 복싱은 서양에서 복싱규칙이 확정되기 이전의 시기다. 1920년 안트워프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복싱은 1908년 런던올림픽때의 밴텀, 페더, 라이트, 헤비 4체급경기를 시범종목으로 열려 영국이 전체급 우승을 한바 있다.
단성사(團成社)는 1907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묘동에 세워진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적인 상설 영화관이다. 1915년 화재로 소실되고 5월에 재개장된다. 1918년 광무대(광무대(光武臺)는 1898년부터 1930년까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있던 구극전문극장) 경영자였던 박승필이 인수한 것이다. 1926년이후 조선극장과 우미관과 함께 한국인을 위한 공연장이 된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대륙극장’으로 불리다, 1945년 해방과더불어 단성사로 복귀한다. 2001년 철거되고, 2005년 멀티플렉스로 재개장되었다.
#단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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