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무예10년 1996-2005를 돌아보며..

2019. 9. 23. 16:08Report/City 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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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충주무세계무예마스터십조직위원회에서 준비중인 백서작업중 충북무예 20년을 정리하고 있다. 그 중 1차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200여건(중복내용제외)의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찾았다.

대부분 충주무예 내용이다. 충주가 무예이전에 택견과 관련해 관심이 높았던 것은 1983년 전후다. 택견의 무형문화재 지정과 택견전수관  유치에 헌신한 6선의 이종근 국회의원이 있었다. 그리고 택견전수관 건립을 계획한 1995년부터 다시 관심이 높아졌고, 1997년 택견전수관 개관식과 겸해 개최된 전국택견대회와 1998년 충주(수안보)무술축제를 기획한 이시종 충주시장이 있었다.

충주무술축제는 초기에 갈등이 많았다.  충주시와 충주시의회의 팽팽한 논쟁이 있었고, 기존 축제와의 개최연도를 두고 예산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2000년 세계축제가 되면서 전환기를 맞으며 정부우수축제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나 예산확보와 정치적 갈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럴때마다 여론조사가 이루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축제의 명맥은 이어졌다. 하지만 해외무예인들의 참가가 늘어나면서 2002년 세계무술연맹(WoMAU)이 27개국 29개 무예단체가 함께 회원단체로 창립하면서 제2 전환기를 맞는다.

10년간의 주요 흐름과 이야기는 세계무예마스터십 준비부터 현재까지 6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일단 무예에 대한 인식이 다른 소재보다 약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예단체들의 영세성과 낮은 추진력도 어려움을 만들었다. 훌륭한 소재임에도 정치적으로, 경제적, 그리고 무예인들의 갈등으로 어려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4년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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