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무예도보통지는 유럽에 알려졌다

2019. 7. 9. 10:09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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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이탈리아 영사를 지낸 카를로 로제티가 남긴 책  '꼬레아 에 꼬레아니(Corea e Coreani)'에는 450여장의 사진이 있다. 이 사진과 더불어 로제티는 자세한 설명을 달아 당시의 시대상을 생동감있게 보여 주고 있다.

이 당시 통역을 맡은 양홍묵로제티에게 많은 자료를 제공하는데, 그 중에 로제티가 떠나기전 '무예도보통지'를 선물한다. 로제티가 한국을 떠나기전 오래된 병법서를 구하고 있었던 차 양홍묵이 이 책을 선물로 주었다는거다.

'Corea e Coreani ' 1904판(1권, 2권으로 나뉘어짐, 이탈리아판)에는 무예도보통지의 여러 그림을 포함시켰다. 1904년에 유럽사회에 무예도보통지를 알려진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책의 1권 56-57페이지에는 로제티무예도보통지를 구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나는 한국을 떠나기전에 그(양홍묵, 통역담당을 말한다)에게 한가지 은혜를 받았다. 나는 오래전부토 고인쇄된 아주 흥미로운 한국의 벙법서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떠나는 날, 미스터 양은 자신을 기억하며 소장하길 부탁하며 그 책(무예토보통지를 말함)의 멋진 원본을 하나 가지고 왔다. 내가 한국을 영원히 떠나는 상황에 더이상 나에게 기대할 것이 없었음에 이것은 더욱 고마운일이었다"

양홍목은 1866년생으로, 1896년서재필(徐載弼)이 조직한 협성회(協成會)의 주요구성원으로 활약하였다. 이어 독립협회가 결성되자 이에 가입, 1898년 2월 제의(提議)로서 사법위원서기를 겸하면서 애국계몽운동에 적극 투신하였다. 그 뒤 배재학당 교원으로 재직중 1898년 11월 독립협회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가해지자, 이승만(李承晩) 등과 함께 학생 등 군중을 이끌고 경무청으로 몰려가 만민공동회를 개최, 독립협회 탄압을 성토하였다. 또한, 정부의 사주를 받은 보부상들이 만민공동회 개최를 방해하는 공작을 벌이자, 이러한 음모를 폭로하고 그 처사를 강력히 규탄하였다. 그 뒤 협성회 회장을 맡으면서 그 기관지로 일반대중과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순한글 신문 『매일신문』을 간행하는 등의 언론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관료로 활동했다는 기록에 동일인물이 있다. 

 

카를로 로세티(Carlo Rossetti, 1876년 10월 18일 -1948년 9월 26일) 이탈리아 외교관이자 해독제군이었다. 1884년 대한제국이 이탈리아왕국과 수호통상조약 체결이 성립되고, 1886년 정식체결이 이루어진후 1902년 11월 6일부터 1903년 5월 15일까지 근무하면서, '꼬레아 에 꼬레아니(Corea e coreani)'와 '한국에서의 서한(Lettere dalla Corea)' 등의 서적과 논문을 발표했다. 대한제국영사당시 그는 중위계급이었고,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해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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