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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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뮤지컬로 나오다.
1910년 신흥강습소로 출발해, 1919년 군사전문무관학교가 된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가 뮤지컬로 나왔다. 1910년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는 전 재산을 처분한 돈 40만원(현, 600억원 상당)을 들고 만주에 와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고, 1920년 폐교될 때까지 3500여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나석주, 김원봉, 지청천 등 독립운동가들이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다. 신흥무관학교는 광복 이후 우당 선생의 동생인 성재 이시영 선생에 의해 1949년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신흥초급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6·25전쟁 등을 거치며 학교 재정이 어려워졌고, 1951년 조영식 박사가 학교를 인수하면서 1954년 캠퍼스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으로 이전했으며, 1960년엔 이름도 ‘경희대학교’로 바..
2019.03.10 -
신흥무관학교의 모든것
1907년 국내의 애국지사들이 항일비밀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했다. 경술국치로 국권을 상실하자 신민회는 1910년 12월, 신민회 전국간부회의를 열며 국외 독립군기지 장소를 구체적으로 확정짓고, 대일 무장투쟁을 공식노선으로 채택했다. 즉 만주 서간도에 신(新)영토 로서 토지를 구입하고, 여기에 무관학교를 세워 기회가 오면 독립전쟁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할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았다. 이에 따라 각 도 대표들은 지역으로 돌아가 서간도에 갈 이주민과 군자금 모집에 착수했다.가장 먼저 우당 이회영 가문이 1910년 12월 30일 압록강을 건너 망명을 결행했다. 백사 이항복의 후예인 우당 이회영 6형제는, 삼한갑족(三韓甲族)의 명예, 부귀영화도 버리고 모든 가산을 처분했다. 지금의 명동 YWCA 건물과 주차장 그리고..
2011.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