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614)
-
소림사 주식상장 진위
중국 소림사가 주식상장을 한다는 소문이 허다하다. 중국통신내일(china.naeil.com)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27일 중국 허난(河南) 덩펑시(登封市) 정부의 ‘덩펑송산소림문화관광그룹유한회사(登封嵩山少林文化旅游集团有限公司)’는 홍콩 중뤼국제투자유한회사(中旅国际投资有限公司)와의 합작에 성공했다고, 양측이 공동으로 설립한 ‘홍콩중뤼(덩펑)송산소림문화관광유한회사(香港中旅(登封)嵩山少林文化旅游有限公司)’는 정저우(郑州)에서 현판식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송산풍경명승구 웹사이트에 올라온 소식을 근거로 이 이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합작배경, 합작원칙 및 내용, 합작의의 등에 대한 설명은 있으나 합작 후 상장 관련에 대한 소식과 구체적인 투자액수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
2010.02.01 -
동남아는 신비의 세계 같습니다.
동남아는 신비의 세계 같습니다. 우린 아시아를 한중일 동북아만 생각해 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해양문화와 해양교류에 대해 우리와 동남아는 매우 친숙할 텐데요. 저는 올해 동남아를 중심으로 조사하고 싶습니다.
2010.02.01 -
조선통신사가 닭을 훔쳤다고?
일본인들은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발언이나 글을 자주 남긴다. 그 중에서도 조선통신사가 닭을 훔펴 서민과 싸움을 하는 조선통신사 그림을 놓고 인터넷까지 말이 많다. 위 그림처럼 일본 경도대학에 있는 통신사 그림사료에는 조선인이 닭을 훔친모습이라고 당당하게 써놓고 있다. 닭을 훔펴서 사람들과 싸우는 모습이란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일본의 아이와 함께 놀면서 닭을 함께 쫓아 조선인의 모습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이 그림을 놓고 조선인이 도둑질을 한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 조선통신사와 관련해 후쿠오카번의 당시 기록에는 닭 1천마리를 구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은 통신사가 도쿠가와 쇼군에게 선물로 줄 매의 먹이로 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통신사의 접대용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화련한 통신사가..
2010.01.31 -
태권도계의 퍽치기
요즘 태권도 제도권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행태를 생각하면 '처용가'가 떠오른다. 서울 밝은 달에 밤 깊도록 노닐다가 / 들어와서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겠는가 신라시대의 처용가이다. 처용은 다른 남자와 정사를 벌이고 있는 아내의 배신에 화가 치밀었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겠는가' 라며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처용처럼 외도한 아내를 용서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남자는 아내의 배신(변절)에 치를 떨며 현장에서 작살냈을 것이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태권도계에도 우정과 신의를 저버린 배신과 배반이 횡행하고 있다. 원칙과 명분이 없는 이합집산과 철새 태권도인들의 등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눈 앞의 정치적 이익을..
2010.01.31 -
프로복서 최현미, 세계챔피언이 되기까지
오늘 무한도전을 통해 감동적인 두 프로복서의 활약을 보았다. 매스컴이란 그렇게 무서운거다.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는 중계방송이 될 수 있다는 예를 보여준것이다. 그러나 무한도전의 프로그램 특성상 반복된 화면이나 무한도전맴버들의 지나친 표현들은 좀 과했다. 아래 영상자료는 국내 무술전문미디어인 무카스미디에서 최현미선수가 챔피언이 되기까지를 인터뷰하며 소개한 자료다. 여자의 몸으로 스폰서도 없이 챔피언자리를 지켜야 하는 프로복싱세계의 아픔은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한때 최고의 인기스포츠가 프로복싱이었건만,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복싱선수들에게 스폰서를 구하기 힘들정도로 어려운 환경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 어려운 상황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복싱..
2010.01.30 -
고인이 된 꺼벙이 길창덕화백
성격 모나지 못한 캐릭터 ‘꺼벙이’. 머리에 땜빵과 '낙서엄금' 등을 기억하고 있다. 이 꺼벙이를 그린 만화가 길창덕 화백이 인생 80으로 생을 마감했다. 길화백은 1930년 평북 선천출신으로 1955년 ‘야담과 실화’라는 잡지에 ‘허서방’을 발표하며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1960년대에는 만화협회 총무를 맡기도 했으며, 경향신문에서도 활동했다. 특히 1961년에는 경향신문에서 주최하는 ‘만화가 쇼’를 통해 강원도와 현등사 하이킹 등의 프로그램으로 만화에 대한 다양한 애착을 보이기도 했다. 1970년에 접어들어 만화왕국과 소년중앙에 ‘꺼벙이’를 연재하기도 했고, 동아일보에 만화만평에도 기고했다. ‘꺼벙이’가 인기를 끌면서 그는 각종 어린이관련 행사에서 인기 초청인이기도 했다. 1971년에는 여성중앙에 ‘..
2010.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