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계는 아픈 과거를 반복할 것인가 2009.01

2010. 1. 17. 14:34Report/Martial Arts

728x90
반응형

정권이 바뀌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변화를 예측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 변화는 윗물이 바뀌었으니 아랫물도 준비하고 바꿔야 한다는 묘한 이치의 논리를 앞세운 사람들의 움직임이다. 그 속에 일부 무예인들도 바빠졌다.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자신의 무예가 빛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이자 변술(變術)이다.

우리 역사에서 무예인들은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곧은 삶이었다. 나라가 어려울 때 힘을 합쳐 해결의 화두를 던졌고, 나라가 흥행할 때 즐길 줄 아는 여가로서의 무예도 있었다. 이것은 통치세력의 줄대기가 아니었고 살아남기 위한 변술도 아니었다.

해방 이후 전통무예는 정치권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부 종교계의 통폐합을 위한답시고 순수무예인들을 동원했고, 일본무도의 기득권을 살려준답시고 전통무예인들을 불러들여 협박과 고문도 자행했다. 심지어 군부독재시절에는 전통무예인들의 통합을 내세운 강제적(?) 활용도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예인들은 항상 피해의식에 빠져 있었고 그 피해의식을 극복한답시고 통치세력에 아부하고 기대는 불쌍한 일부 무인(武人)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변화와 글로벌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각종 법률도 제정되고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되고 있다. 여기에 무예인들은 목을 메고 있다. 법의 혜택과 제도권 진입이라는 목표를 두고 새해부터 바쁘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각 단체들의 진실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이해집단을 만들어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채 외부의 힘을 빌어 성장하려는 무예인답지 못한 행동들이 속속 들어 나고 있다. 학계는 명확한 방향제시도 못하고 있고 무예계내부에서는 멍석이 깔린 상태에서도 눈치만 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놓고 일부 진보무예계에서는 과거의 냉대받아 왔던 무예계의 아픔이라 표현한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경험도 행정능력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눈치가 빠른 일부 무예인들이 정치와의 친분을 앞세워 방황하는 무예들을 끌어 모아 단시간내에 기득권과 뭔가 해 보겠다는 성급함도 보이고 있다.


언론-학계가 무예계 바로 봐야

정치권의 실권자인 누구의 힘을 빌어 성공할 것이다. 누구의 라인이라 우리는 성공할 것이다. 이런 모호한 논리는 해방 이후 아픈 과거 때문에 상처받은 무예인이라 보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그 이유는 무예인들이 유일하게 남은 자존심마저 버리는게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다. 이러한 자존심을 버려가면서까지 살아 남으려는 욕구 때문에 무예를 조작하고 애매모호한 체계를 만들어 가는 무예계를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전통무예진흥법제정이후 국내에는 무예연합단체로 일컫는 단체가 7개정도 등장했다. 이 단체들에 가입된 종목들은 여기저기 중복 가입한 단체가 있는가 하면, 어떤 목적과 목표를 두고 참여하고 있는지 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일단 참여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2000년대 접어들어 사단법인 설립에 대한 법이 완화되면서 각종 무예들이 분파되거나 법인화하는 과정과 다를바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 단체들중 급조된 단체들의 내면에는 소외된 무예단체이거나 신생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어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을 놓고 관계부처에서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고민에 빠진 눈치다. 다른 법률제정이후에도 이런 경험이 많아 항상 관계부처의 담당자들이 분주했던 것을 고려해 보면, 그래도 전통무예영역은 이해단체들이 많은 것은 아니어서 쉽게 풀어갈 것이라는 예측은 된다. 그러나 생각보다 무예단체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스승과 제자의 관계 혹은 단체들의 유사성), 논리보다는 정치적 힘의 논리로 풀어가려는 답답한 일처리는 관계부처의 담당자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경우를 초래하고 있다.

이 아픈 우리 무예계의 현실에 대해 설상가상으로 무예전문언론매체와 학계는 핵심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무예전문지라 일컫는 언론매체들마저도 본질에서 벗어난 기사들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객관적인 논지랍시고 “영세하다”, “규모가 작다”, “이건 또 뭐야”라는 식으로 기사화되고 있거나 종합분석이라기 보다는 특정인의 주장에 편향된 기사들로 무예계의 아픔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심지어 학계에서는 '체육이다 문화재다' 하여 자신의 전공영역으로 무예와 관련된 정책들을 끌어 당기려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펼쳐지고 있다. 또한 학술단체들도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채 그동안 스포츠화된 무도의 영역에서 전통무예영역으로의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무예의 발전을 위해서 언론매체와 학계에서는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닌 숨어 있는 잠재력과 그 무예가 지닌 본질을 찾아야 한다. 여기저기 연합단체가 만들어지지만 이 단체들이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가 않거나, 단지 세력을 키워보겠다는 편향적인 모습에 불과한지를 명확하게 찾아내야 할 것이다.


무예계, 자성과 자생력 키울 때

지금 무예계는 자성해야 한다. 법의 혜택과 제도권의 진출은 호락호락한 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혜택과 진출은 반드시 무예와 무예단체에게 막대한 책임이 부여되고 과거의 자율경쟁체제와 같이 민간단체로서의 자율활동보장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최근 국기원이 법정법인화에 대한 논쟁을 보면 쉽게 이해 될 수 있다. 이것은 자율경쟁과 법적 보장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

법의 혜택은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 활동에 대해 냉정한 평가가 따르게 되고 그 평가에서충족되지 못한 무예나 단체는 공개적으로 퇴출 혹은 저급무예로 평가받아 사장될 수 있다. 또한 공개적인 경영공시를 통해 무예나 단체에 대해 공론화된다는 점에서 그 책임은 클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이러한 책임에 대해 확실한 역할을 한다면 훨씬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정치적인 힘을 빌어 일시적인 활동에 대해 접근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변화가 많은 정치판을 고려할때 중장기적으로는 그 역할은 큰 효과를 얻어낸다는 보장은 없다. 또 정치판도가 바뀔때마다 협회수장을 바꿔가며 명맥을 유지하려는 일부 스포츠계나 무예단체들도 몇회가 지나면 한계가 들어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될 것이다.

결국은 무예나 무예단체들이 자성하고 자생력을 키우는 노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 노력이 뒤따를때 법의 혜택과 제도권의 진입이 뒤따를 것이며 정부도 움직이는 것이고 지자체와 기업도 움직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기축년은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것도, 잡세력을 만드는 것도, 단체간의 우격다짐을 하는 것도 아닌 각 무예가 스스로 재정비하고 문제점을 풀어가는 내실을 기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학원을 다니거나 공부를 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무예계는 지금 자생(自生)을 위한 제2 도약을 목표로 공부하고 연구할 때다. 일선 도장의 고민이 무엇이고, 해당 무예의 문제가 무엇이며, 또 무예의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무인들답게 통치세력에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를 던져주고, 혼탁한 우리사회에 쌈박질의 하수가 아닌 지혜를 살리는 폭력(暴力)과 같은 무력(武力)이 아닌 진정한 무예계에서 이야기하는 무예인으로서의 무력(武力)의 지혜를 던져 줄 때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