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1. 19:36ㆍReport/Good Writing
전국에 넓은 도로가 깔린 것은 일제 강점기다. 일제는 사람들을 강제 동원해 보상 한 푼 안 한 땅에 ‘신작로’를 만들었다. 신작로를 처음 본 조선인들은 “둘이 나란히 서서 얘기하며 걸을 수 있어 좋긴 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중에는 달구지를 굴리며 편익을 누린다(김 의원, 『국토이력서』). 국토해양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도로는 총 10만4236㎞다. 한 줄로 펴면 지구 두 바퀴 반을 도는 거리다. 이 중 절반은 자동차가 급증한 1980년 이후에 뚫린 것이다. 구시가지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개천을 복개하고 고가도로와 터널을 만들어 도로를 늘렸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은 잃은 게 많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차로를 늘려도 차는 차대로 막혔고 보행자는 보행자대로 불편했다. 중세의 도로망에 자동차를 접목한 유럽의 도시에서는 1970년대 벌써 이런 거부반응이 나왔다. 그래서 시도한 게 ‘도로 다이어트(Road Diet)’다. 군살을 빼듯 차로를 줄이고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에게 넓고 편한 길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자전거 애호가 댄 버든이 96년 ‘워커블커뮤니티스’를 결성하고 도로 다이어트에 앞장선다.
광화문광장이 주말에 개방됐다. 세종로 왕복 16차선을 10차선으로 줄이고 중앙 공간을 볼거리로 채웠다. 크게 보면 새 청계천·서울광장에 이어 서울 구도심에서 단행된 세 번째 대형 다이어트다. 차로를 줄여 자전거 길을 만드는 공사도 줄을 잇고 있다. 유행이라고 무조건 따라 할 것도 아니지만 차 막힌다고 화낼 일도 아닐 성싶다. 조상이 밟던 좁디좁은 진흙탕 길을 떠올린다면 우리의 광폭 차도는 허리 살을 좀 빼도 될 듯하다. 걷고 페달을 밟는 재미를 찾아보자.
중앙 090803 [분수대]
'Report > Good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동에세이] 아이들을 살리는 길 (0) | 2010.05.04 |
---|---|
Green shoots or yellow weeds? (0) | 2010.05.01 |
똑똑한 만성B간염 대처법 (0) | 2010.04.27 |
나혼 (1) | 2010.04.22 |
꿀벌 법적 지위 (0) | 2010.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