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다이어트

2010. 5. 1. 19:36Report/Good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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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도로다운 도로가 없었다. 프랑스 신부 샤를 달레는 조선의 1급 도로라야 네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정도이고, 폭이 30㎝에 불과한 3급 도로는 그나마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고 1874년 출간한 『조선천주교회사』에 기록했다. 조상들이 도로 닦기를 기피한 것은 길이 없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는 ‘(무도칙안전)’ 의식이 뿌리 깊었기 때문이다. 대관령 옛길에는 외적이 쉽게 넘어 한양을 침범하자 고갯길을 넓힌 사람의 묘를 파헤쳤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진위를 떠나 도로 개설을 이적행위쯤으로 여긴 조상들의 생각이 엿보인다.

  전국에 넓은 도로가 깔린 것은 일제 강점기다. 일제는 사람들을 강제 동원해 보상 한 푼 안 한 땅에 ‘신작로’를 만들었다. 신작로를 처음 본 조선인들은 “둘이 나란히 서서 얘기하며 걸을 수 있어 좋긴 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중에는 달구지를 굴리며 편익을 누린다(김 의원, 『국토이력서』). 국토해양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도로는 총 10만4236㎞다. 한 줄로 펴면 지구 두 바퀴 반을 도는 거리다. 이 중 절반은 자동차가 급증한 1980년 이후에 뚫린 것이다. 구시가지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개천을 복개하고 고가도로와 터널을 만들어 도로를 늘렸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은 잃은 게 많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차로를 늘려도 차는 차대로 막혔고 보행자는 보행자대로 불편했다. 중세의 도로망에 자동차를 접목한 유럽의 도시에서는 1970년대 벌써 이런 거부반응이 나왔다. 그래서 시도한 게 ‘도로 다이어트(Road Diet)’다. 군살을 빼듯 차로를 줄이고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에게 넓고 편한 길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자전거 애호가 댄 버든이 96년 ‘워커블커뮤니티스’를 결성하고 도로 다이어트에 앞장선다.

  광화문광장이 주말에 개방됐다. 세종로 왕복 16차선을 10차선으로 줄이고 중앙 공간을 볼거리로 채웠다. 크게 보면 새 청계천·서울광장에 이어 서울 구도심에서 단행된 세 번째 대형 다이어트다. 차로를 줄여 자전거 길을 만드는 공사도 줄을 잇고 있다. 유행이라고 무조건 따라 할 것도 아니지만 차 막힌다고 화낼 일도 아닐 성싶다. 조상이 밟던 좁디좁은 진흙탕 길을 떠올린다면 우리의 광폭 차도는 허리 살을 좀 빼도 될 듯하다. 걷고 페달을 밟는 재미를 찾아보자.

중앙 090803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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