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약장수, 불법시술 등 부정적 인식 강해 외면
차력의 흥행은 1970년대 종합무술대회가 개최되면서 일반인들에게 신선한 볼거리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붉게 탄 쇳덩이를 맨손으로 마음대로 주무르는 화공술, 차돌을 맨손으로 도끼질하듯 다듬는 파격술 등은 당시 현대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괴력(?)으로 당시 관람객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MBC의 <묘기대행진>에서 매번 등장하는 차력사들의 차력술은 시청자들에게 최고의 볼거리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1977년에는 내, 외공술과 기공술을 통합해 '충무무술'이 창시되기도 했다. 하나의 체계적인 무술로 발전해 보겠다는 의지였다. 단칼에 밀감 조각내기, 인체를 무기로 삼는 내공, 검과 봉을 사용하는 외공, 천지수인력(天地水人力)을 합하여 큰 힘을 내는 기공의 기법을 통일한 것이다. 이러한 충무무술은 1975년부터 차력과 타격술이 통합 발족되면서 기공술을 연마한 최대길(당시 40세)과 내외공술의 홍광주(당시 35세)가 그 주인공이다. 최대길은 20세전후로 5년간 계룡산에서 수도했고 차력술을 배워 자동차 넘기기, 트럭 버스를 맨손으로 끌기 등의 특기를 지니며 남한산성에서 제자를 육성해 왔다. 또, 홍광주는 주먹으로 벽돌 7장깨기 등 타격술에 특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차력의 세계가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도심의 약장수들이 차력을 이용해 불법으로 약을 판다는 사회적인 비판이 뒤따랐다. 결국 수많은 약장수들이 입건됐고 차력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받게 됐다. 특히 1981년 MBC뉴스센터에서는 '신비로운 차력의 세계'라는 주제로 심층취재보도되면서 차력계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2주일간의 집중취재를 통해 차력수련에 정진하고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약을 팔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사기성이 농후한 차력사들에 대한 비판이 첫 보도된 것이다.
사회적 비판이 뒤따르자 일부 무술인들이 도장을 차리면서 또한번 차력은 사회적 외면을 받게 됐다. 1980년대 초반 불법의료시술행위로 전국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 차력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일이 일어났다. 아들·딸 낳는 법, 임신조절이라든가, 요통·디스크치료 시술 등으로 도장이 아닌 불법 시술소의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불신은 순수한 차력사들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차력은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