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무당을 복원하라

2024. 9. 22. 08:07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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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부는 청와대 시절의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끊겠다며 집무실을 옮기고 국민에게 개방했다.  청와대는 이제 관광이나 대통령기념관의 기능으로 변경됐다.

이 개방을 앞둘 당시 많은 단체들이 개방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며 불을 지피고 있다. 무예계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참여를 희망했다. 개방되는 청와대 자리에 무예프로그램을 고민한다면 보다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 청와대 자리는 국가차원의 무예를 평가했고, 활터도 있었다. 그 중에 융무당은 무과시험이나 무사들을 평가하던 곳으로 원래는 ‘관취당(關聚堂)’이었다. 이것을 사용이 불편하다 하여 숙종임금은 무사들을 시험하고 사열할 때 그 땅이 좁다고해서 보수이후 ‘융무당(隆武堂)’으로 변경했다.

이 융무당은 일제강점기에 융문당(隆文堂)과 함께 용산에 있던 일본사찰인 고야산 용광사(高野山 龍光寺)로 옮겨져 전몰일본병사들의 남골당으로 사용되었었다. 해방이후 이 두 건축물은 원불교 서울교당에서 융문당은 대각전인 법당으로, 융무당은 대각사로 생활관으로 사용되다가, 2006년 전남 영광으로 이전되어 원불교 소유의 '우리삶문화옥당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경복궁의 건축물은 청와대라는 이유로 그동안 복원되지 못했다. 특히 저 멀리 전남 영암에 가 있는 융문당과 융무당부터 제자리 복원해야 한다. 복원된 이후에 무예를 시범보이던 활쏘기대회를 하든 무예프로그램이 이루어져야 한다.

청와대이전에는 경무대였다. 조선 개국이후 태조가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후원(後園)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총독관저, 그리고 미군정에서는 사령관 관사로 외인들 차지였다. 해방이후 이승만정부가 경무대(景武臺)라는 이름을 되찾아와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했다. 이 경무대에서 전국의 시도대표를 모아 이승만대통령의 생일을 택하여 친람전국무도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의 성격은 일제강점기 일본천황친람무도대회나 천황탄신일기념대회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일제잔재가 해방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었다.

과거 노무현 전대통령이 생각난다. 노전대통령은 취임후 경호실 무도시범을 대신해 국내 무예시범과 무예원로 초청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예행연습까지 해 놓고 탄핵과 탄핵이후 미국방문 등으로 취소되었다. 아쉽지만 당시 준비과정은 의미 있었다. 참가 무예종목에 제한을 둔 상황에서 무예종목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예들의 모습도 보았다. 참가예정이었던 무예인들과 단체역시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해방이후 소외된 전통무예를 대통령이 직접 초청 제안과 함께 준비를 했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무예인들은 융무당이 복원된다면, 그 곳에서 모든 무예가 하나되어 전국무예대제전과 같은 큰 판을 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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