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검법, 본국검의 과제

2024. 4. 18. 14:45Report/Research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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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무예도보통지> 본국검의 ‘新劍’은 조선이 본국검을 창안한 것으로 신라검이 아니라, 새로운 검법이다.” 라는 주장을 해왔는데, 이에 대해 일부 반론도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나는, ‘新劍’은 신라검이라고 주장한다. <무예도보통지>에 신라 황창랑의 설화를 언급한 것 이외에는 본국검이 신라검이라는 이야기는 없는데도 신라검이라는 주장이 무예계를 지배하고 있다. 오히려 신라 황창랑을 운운하려면 검무에서 그 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하나는, <승정원 일기>에서 예도가 '본국검예'라고 한 것을 두고 일부 무예인들은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과 연관 짓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승원일기>의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예도는 본국검예다.” 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예도는 <무예도보통지>에서 <무비지>의 조선세법을 다룬 것과 유사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에서는 본국검과 예도의 기법이 다르다.
본국검에 대한 연구자들의 논쟁은 다양하다. 보는 관점과 해석의 차이들이 있는 것이다. 실제 <어영청중순등록>에는 같은 시기에 본국검과 신검이 나란히 등장하고 있어 별개의 무예로 시행된 것으로 보이는 기록도 있다. 본국검이 우리 검법이었고 실용성이 있었다면, 당시 시험합격자가 0.2%에 불과했다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을까?
논쟁 속에서 새로운 근거와 논리가 성립될수록 정론에 가까워진다. 이 때문에 무예는 끊임없이 공개 연구와 학술 토론이 필요하다. 학회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연구는 학회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언제나 학술 연구가 100% 옳은 것만은 아니다. 이론이 발표되고, 그 기존 이론이 깨지는 것도 학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학회 활동이다.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은 조선시대에 만든 검법이다. 여기에는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아직도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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