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2. 21:20ㆍReport/City Marketing
일제강점기의 무예사와 스포츠사 연구는 학교사 연구와도 밀접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학교체육사는 대부분이 경성에 있는 학교이거나 주요 도시 지역의 근대학교 이야기다.
4대성안의 학교들은 현재 한강이남으로 거의 모두 이전했고, 무예나 스포츠 교육의 맥은 축소됐다. 그러나 유도, 검도, 야구, 축구, 체조, 배구, 육상 등으로 유명했던 일제강점기 성밖의 학교가 있다. 현재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소재한 성남중고등학교다. 이 학교의 설립배경을 알면 당시 성밖의 학교, 다시말해 경성의 도시확대정책에 따른 당시 학교설립과 이전 등을 이해할 수 있다.
성남시가 있는데, 왜 성남학교가 서울에 있을까? 성남시보다 성남학교가 먼저 개교했다. 서울에 세종로가 있는데, 왜 세종시가 그 곳에 있을까? 를 이해하면 쉽다.
'성남(城南)'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도시 개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성의 동쪽 성동, 북쪽 성북, 서쪽 성서, 그리고 남쪽인 성남(城南)이다. 일제강점기 대방동은 성의 남쪽이 아니라 한강이남이다. 대방동이 성남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여기에서부터 궁금해진다. 성남중고등학교는 원래 남산 자락의 이태원에서 출발했다. 1937년 재단법인 원석학원이 설립되고 '용산고보'로 허가를 추진했었다. 용산중학이 이미 있던 시절이고, 교육개편을 앞두고 있던 시절에 중복 명칭을 우려해 성의 남쪽 '성남'이라는 이름으로 1938년 교명을 성남고등보통학교로 변경 신청했었다. 그러나 다시 조선교육령에 의거하여 성남중학교로 교명을 확정했다.
학교설립은 10여년의 노력이 있었다. 그 과정을 보면, 1926년 7월 15일 이태원에서 이태원청년단 원석학원 모태 조양학원이 개원되었으며, 1936년 조양학원이 이태원보통학교(현 이태원초등학교)로 인가를 받은 상태였다. 이 곳에 1938년 4월 25일 5년제 성남중학교가 2학급, 120명으로 개교했다. 당시 조양학원은 지역민들의 후원으로 학교 지원이 이루어진 가운데 성남중학의 이전과 관련하여 한남동 등이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노량진옆 대방동으로 이전이 확정되자 지역민들의 거센 반발도 있었다. 한남동 지역에 학교를 보유하려는 지역민들의 시위도 있었다.
성남학교의 설립과정을 보면, 조양학원을 비롯해 여러 학교를 운영하던 사람이 있었다. 광산을 운영하던 원윤수의 후원이 있었으며, 원윤수는 이태원보통학교 교장을 하는 등 학교 설립과 운영에 적극적이었다. 그가 성남중고등학교 설립을 도왔다. 원윤수의 지원으로 1941년 현재 대방동 부지로 이전했다. 이후 1946년 신학제에 의거 5년제 성남중학교를 6년제 성남고등중학교로 변경하고, 1952년 성남중학교와 성남고등학교를 병설한 것이다.
성남학교 설립을 꿈꾸던 김석원은 일제강점기 일본사관학교출신으로 일본군 장교였다. 그는 고종때 마지막 황실무관학교 학생이었다. 조선이 국권을 잃자, 고종은 이 사관생도들을 일본유소년사관학교로 유학으로 보냈다. 일본에서 일본사관학교를 진학하는 이들도 있었고, 학교를 나와 독립운동을 한 이들도 있었다. 마지막 무관생도들중 한명이 김석원이었다.
김석원과 같은 일본사관학교출신, 특히 대한제국무관학교 출신들은 조선에 남은 독립운동가 가족들을 도와 주었다는 기록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조선총독부는 이들을 감시해 왔다. 김석원은 한국의 유소년사관학교를 꿈꾸었다. 어쩌면 대한제국 무관학교와 일본유소년사과학교를 접목한 사관학교 이전 중고등과정 학교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김석원은 학교설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조선총독부의 반대와 설립방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원윤수를 만나 공동으로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고, 해방이후에는 사관학교를 진학하려면 성남학교를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전국에서 유명한 학교가 되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실제 교련수업이 다른 학교와 달랐고 엄격했다.
체육수업도 남달랐다. 과거 일본사관학교나 무관학교 출신들이 체육교사를 많이 했듯이, 성남학교의 스포츠운동부는 체육고등학교 못지 않았다. 지금은 검도, 유도, 야구부만이 남아 있지만, 과거 체조와 육상, 배구를 비롯해 박종환감독이 재직했었던 시절 축구부도 있었다. 지금은 다양한 스포츠클럽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교교 학점제로 변경되면서 스포츠이론수업도 개설되어 학생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넓은 운동장과 야구장, 실내 야구연습장, 검도장, 트레이닝장, 유도장 그리고 스크린골프장, 테니스장, 실내체육관 등을 갖추고 있는 학교도 보기 드물다.
글. SN 44 허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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