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8. 09:35ㆍReport/Sports
한국의 야구역사연구도 할 일이 태산이다. 1910년대부터 미국 야구의 해외 투어에서, 조선의 야구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지금 한국 야구의 저력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석전으로 다져진 투구력은 투수 강국일수밖에 없는 이유일까??
그 중에 미국사회에서 이름을 날렸던 필치성 선수 이야기를 찾았고, 계속 찾고 있다.
1912년 하와이 호놀루루에는 한인팀과 하와이 야구팀이 야구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923년 또다른 한인 야구팀이 나타난다. 순수 한인들로 구성된 팀이다.
필치성이라는 한인 선수가 미국 언론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9살 되던해 하와이로 이주해, 19세때 퍼시픽 칼리와 (24세때는 오레곤대학의 스타투수였다.
그의 첫 대학 경기는 18삼진 무안타, 2학년 때 경기당 평균 15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필드의 모든 포지션을 담당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그해 2년차에 그는 .350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1923년 미국 신문에 등장했다. 투수로서 사이드와 언더의 투구를 자유 자재로 하는 선수로 알려졌다. 한국의 석전(石戰) 실력으로 코치를 설득했던 일화도 있다.
호놀룰루 한인기독교협회는 야구팀을 한국으로 파견하면서, 1924년 6월 17일, 한국 최고라고 알려진 서울 선수 13명으로 구성된 팀이 하와이 해외 투어경기에 참여했다. 여기에 필치성 선수가 합류했다.
필치성은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해 하와이 한인 신문의 창간 편집자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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