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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술, 궁술, 기추 종목 교육이루어졌을 수 도
그렇다면 무예학교는 어디에 있었을까. 명확한 사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단지 필자의 추측으로는 무예학교가 개교할 당시에 동래부는 무청(武廳,치안과 군사를 담당하던 관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았다. 더불어 무예학교를 만든 정현석이 동래부사로 재직할 시기인 만큼 동래부 동헌(東萊府 東軒,부산시 동래구 수안동 421-56번지 일원)부근의 시설을 이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당시 동래부의 경우 일반 군현과는 달리 국방의 요충지였던 지리적 특성상 무청은 중군청, 군관청, 교련청, 장관청, 수성청, 별무사청, 도훈도청과 같은 8청이 있었다. 소규모의 무청도 많았다는 점에서 무청 중 하나를 무예학교로 지정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교육사 연구자들에게는 동래무예학교가 최초의 근대학교라고 주장한 학자도 있다. 1980년 당시 차석기 교수(고려대)는 동래정씨의 족보와 대한제국의 관보를 통해 무예학교에 대해 발표 한 적이 있다. 차 교수가 당시에 주장한 내용을 보면, “무예학교 수료연한은 1년이었으나 후에 2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언제부터 2년이었는지 알 수 가 없었다. 다만 다양한 교육과정과 일정한 학제 등이 근대학교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학교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무예학교의 교과과정에 있어서도 문예반에서는 경서(經書)를 중심으로 교육했고, 무예반에서는 병서(兵書)와 사격술을 중심으로 교육했으며, 이들의 공통과목으로는 산술, 물리, 기술, 농업, 잠업, 광업 등 당시 필요한 모든 과목을 배웠다고 발표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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