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무술대회에 참가한 무예는?

2021. 1. 28. 08:30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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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제1회 전국무술대회를 시작되고 제2회 대회가 열린 1977년 2월 19일 무술의 기본정신을 담은 무술인헌장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무술인의 기본정신은 인간의 선으로써 악을 이기는데 있다. 우리들은 힘을 모아 통일과업에 선도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무술이란 약장사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쓰는 속임수”라는 세간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기자는 보고 있다.

당시 경향신문과 함께 9개의 무예단체(조선일보에서는 8개단체로 보았고, 흑추관이 빠져있다)가 연합해 대한민국무술총연합회(총재 이은상)라는 이름으로 문화체육관에서 개최된 행사장에서였다. 정도술, 문무타격도, 선술, 원력도, 대한십팔기(십팔기쿵푸), 합기도충무무술, 당랑적파, 흑추관 등으로 관(館)규모의 무예들이었고 참가자는 약 100여명이었다. 당시 조선일보 기자는 이 무예들이 보인 시범의 특성을 무기술이 아닌 맨손무예로 발을 많이 사용하였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각 단체들이 일격필살이기 때문에 대중적인 스포츠화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당시 선보인 무예의 기술에 대해서는 경향신문에서는 신술, 검술, 봉술, 창술, 장술, 권술, 타격술, 차력술 등의 시범형태였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 대회의 관람을 위해서는 입장권을 내야했다.  경향신문이 만든 문화체육관(정동)의 수익원이 되었다. 어쩌면 당시 민간채육관이나 다목적시설은 문화체육관이 서울에서 가장 훌륭한 장송이기도 했다. 

전국무술대회 1면 광고 
2인 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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