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앞에서 안경을 벗은 이유는?

2020. 3. 12. 16:42Report/Good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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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4대 임금인 헌종은 자신 앞에서 안경을 낀 외척 조병구를 향해, “외삼촌의 목에는 칼이 들어가지 않는가?”라고 버럭 화를 냈다. 이후에도 조병구는 헌종에게 안경 낀 모습을 적발당하게 되고,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렇다면 왜 예전 사람들은 안경 낀 사람을 무례하다고 봤을까? 사실 그것은 ‘안경 안에서 밖으로 내다본다는 개념’ 때문이다. 이건 또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한옥에서 문을 열고 발을 내리면, 조도 차이 때문에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질 않는다. 우리 전통에는 이런 경우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높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낮다는 인식이 있다.

큰 사찰에서 법회를 하면 많은 스님이 모이는데, 재밌는 건 불상과 가까운 앞쪽에 위치할수록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신참 스님이라는 점이다. 반대로 맨 뒤가 가장 오래된 고참 스님의 자리가 된다. 뒤쪽에서는 앞사람을 볼 수 있지만, 앞에서는 뒷사람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자리 배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사찰에는 아직도 예전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내다본다’는 개념은 ‘내려다본다’는 인식과 유사하다고 이해하면 된다. 임금의 자리는 신하보다 높고, 이는 사찰에서 불상을 모시는 구조도 마찬가지다. 즉 굽어보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낮은 곳에서 우러러보는 구조 속에서 위계 차이를 발생시키는 것은 인류의 공통 문화 중 하나이다. 그래서 중세의 성이나 성당들 역시 한결같이 높은 언덕 위에 건축되곤 했다. 요즘으로 치면 펜트하우스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반대로 윗사람은 아랫사람 앞에서 안경을 써도 될까? 우리 전통에서는 이게 또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정조는 신하들 앞에서도 안경 쓰는 것을 꺼렸는데, 여기에는 대놓고 상대를 무시하는 뉘앙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강자의 약자에 대한 과시와 같은 의미라고나 할까? 이것 역시 도덕적인 지성인이 할 행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글.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안경과 마스크를 관통하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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