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학대가 이제마는 무인이었다

2019. 11. 5. 04:54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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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체육학은 생리학이 바탕이라면, 동양의 무예는 음양론이 바탕이다. 옛부터 몸쓰기를 알면 몸을 아는 의인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시대 이제마(李濟馬)는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 다르므로 같은 병이라도 그 치료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동의수세보원》을 통해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네 가지 체질이 있다고 하는 사상의학을 제창했다. 그의 이야기가 있어 공유한다.

그는  조선 말기의 한의학자, 문관, 무관, 시인이며, 조선 왕족의 방계 혈족이다. 호는 동무(東武)이다. 무관 벼슬을 하여 호를 동무라고 지었다.

선생은 7세부터 큰 아버지에게 글을 배우고 10세에 문리가 트였다. 말타기와 활쏘기 등 무예를 좋아하였다. 13세에 향시에 장원하였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같은 해에 모두 작고하여 집을 떠났다.

39세에 무과에 등용되어 다음해에 무위별선(武衛別選) 군관(軍官)으로 입위(入衛)되었고 1880년 44세에 <격치고(格致藁)>를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50세인 1886년 경상남도 진해현감 겸 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2월 현감으로 부임하여 1889년 12월에 퇴임하였다. 54세인 1890년 관직에서 물러나 서울로 왔으니 약 4년여의 관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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