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매사냥

2010. 12. 26. 11:50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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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매사냥.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나라에서 함께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매사냥은 우리보다는 외국이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국내에서는 지방문화재로 등재되어 있지만 이를 지원하는 예산이 너무 빈약한 실정이다. 무예도 조만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과정을 밟게 될텐데, 매사냥의 예산지원이 빈약한 현실을 감안하면 무예도 이렇게 될까 우려된다.

한국민속매사냥보존회(http://falconry.kr/c0)를 통해 매사냥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다.

대개 동물종 이름 뒤에 ‘사냥’이라는 말을 붙이면 그 앞에 있는 동물종은 사냥 대상물을 뜻한다. 예를 들면 ‘고래사냥, 꿩사냥’이라고 했을 때 고래와 꿩은 사냥 대상물이다. 그러나 ‘매사냥’에서 말하는 매는 사냥의 대상물이 아니라 사냥 수단이다. 즉, 총기사냥에서 총기와 같은 것이다.

매사냥은 인류가 가축 사용에 익숙하게 된 신석기시대부터 비롯되었다. 그 발상지는 세계 여러 곳이라는 설과, 아시아 중부에서 발생하여 전파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의 전파설이 유력하다. 남서로 전파된 매사냥은 인도·이란·이집트 등 고대문명에 흡수되어, 그리스·로마의 매사냥이 되었다.

중세에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풍미하여 잉글랜드의 색슨왕조에서 개화되었다. 즉, 샤를 마뉴 왕은 국비로서 응장(鷹匠:매훈련사)을 양성하였고, 프리드리히 왕은 스스로 매사냥에 관해 저술하였다. 중세 말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는 귀족가문의 기예(技藝)가 되어 오락과 세력 과시의 유기(遊技)가 되었다.

한편, 발상지인 아시아에서는 한민족(漢民族)이 동북 만주지방의 미개인으로부터 이를 습득하였다. 그 후 그들 사이에 번져 한(漢)·당(唐)시대에 크게 성행하였다. 몽골족의 원나라는 국기(國技)로서 대규모적인 매사냥을 하였고, 요(遼)의 천조제(天祚帝)는 매사냥에 빠져 나라를 망치게 하였다고 고증(考證)될 정도였다. 매사냥은 실질적 생업인 수렵으로 발상하였으나, 봉건국가에서는 동서양 모두 이를 공적(公的)인 행사로 삼았다.

한국에서의 매사냥은 기원 전후 고조선시대에 만주 동북지방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숙신족(肅愼族)으로부터 이를 습득하였다. 그 후 고구려를 중심으로 삼국시대에 매사냥이 성행하였다. 그런데 이때 이룩한 매사냥 기술은 중국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일본에도 백제의 귀화인들이 매사냥을 전승하였다는 기록이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 보인다. 또한 ‘해동청(海東靑)’이라는 질이 좋은 사냥용 매는 간도(間島)와 북한지방에서 산출되는데, 중국과 일본에 수출되어 이들 나라로부터 귀히 여겨졌다.

고려시대 충렬왕은 처음으로 매의 사육과 매사냥을 담당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을 두었다. 또한 이의 경영을 위해 몽골[蒙古]에서 기술자를 데려오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이 응방제도를 계승하여 궁중에 내응방(內鷹坊)까지 두었다. 연산군 때에는 응방의 편제를 확대하여 좌·우응방을 두고, 여기에 많은 병졸을 배속시켜 전문적으로 매를 잡아오도록 하였다. 매사냥은 대체로 귀족들 사이에서 성행하였으나, 민간에도 확산되어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전국에서 행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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