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0. 13:51ㆍReport/Sports
한국의 식민지 역사와 스포츠 역사에 관한 연구는 전통적으로 식민지 시대 스포츠의 성격을 '민족주의'라는 키워드로 설명하고, 넓은 의미의 저항 수단으로 해석해 왔다.
일본의 일부 연구에서는 식민 정권이 스포츠를 어떻게 이용했는지 조사했다. 처음에는 1920년대에 두 나라 사이의 조화로운 공존을 장려하기 위해, 그리고 1937년 이후에는 동화 정책을 위한 도구로 되었다.
한국에서는 1910년 일제 강점기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 몇몇 한국 지식인들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서구 체제를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그들은 특히 건강하고 강력하며 자주적인 한국을 건설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수단으로 스포츠를 주창했다. 식민지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사회는 '제국 시대에 서구 문화가 사회 선진화를 위한 도구로 적극 활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일본은 스포츠가 순종을 기르고 스포츠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이에 일본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일본이 즐겼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허용했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자국 대표팀에 한국 선수들을 포함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1920년 조선체육회 결성을 시작으로 각종 체육대회가 열리면서 농촌에서도 체육활동이 본격화되었다.
1913년에서 1934년 사이에 개최된 극동아시안게임대회(FECG)는 아시안 게임의 전신이자 아시아 지역 최초의 국제 육상 대회 중 하나였다. FECG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출범했으며 기독교청년회(YMCA)의 지원을 받았다. 이 대회에는 필리핀, 일본, 중국 3개국이 참가했다. 현재 아시아 최강 스포츠 강국인 한국도 FECG에 참가했지만 일본 대표팀의 일원이었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으나, FECG 참가를 통해 피식민국이 민족주의를 표출하고 한국 현대 스포츠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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