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방 화랑도

2022. 2. 24. 10:26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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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한국전쟁이후 한국무예태동기다.

화랑도의 창시자는 이주방은 1960년대 문교부에 화랑도를 등록하고 왕성한 활동을 했다. 현재 국내에 있는 화랑도협회와는 어떤 관계일까. 화랑도 무예에 대한 계보는 이주방 사범을 원조로 보고 있다. 그는 세계화랑도회를 미국 남가주에 개관했다.

1968년 5월27일 서울장충체육관에서 한국의 모든무도와 무술의 통합대회를 화랑도 이주방 태사와 합기도성무관 의 지한재 관장, 기합도 총재인 최대훈씨가 개최하고 화랑도의 이주방 태사와 이주상 국선이 대회를 주관하였다. 당시 1965년 공수도, 당수도, 태권도가 대한태권도 협회로 통합되어 국기스포츠가 되었던 것 같이 모든무술이 '대한무도회'로 통합 되었다. 당시통합된 무술로는 화랑도, 합기도국술관, 국기도, 비술, 기합도, 합기도성무관, 유술, 유권술, 등 이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무예는 화랑도와 합기도 뿐이다.
당시 대한무도회 회장으로는 박종규(당시 대통령 경호실장) 이 맡고통합대회장은 차지철(당시 국회의원)이 맡았으며 한국의 모든 무도가 하나의 단체로 모이게된 축하행사로서 전국무도통합대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하지만, 당시 대한무도회는 몇몇의 지도자들의 실수로 대회후 무도통합이 무산되고 대한무도회는 1968년 7월 당시의 다른 무도는 모두해산 되었고 화랑도와 합기도 두개의 무도로 나누어졌다. 당시 1968년 7월 이주방 도주는 화랑도 총본부와 단체인 "대한화랑도회"를 정부(문화부)에 등록하고, 또한 기합도의 최대훈, 합기도성무관의 지한재사범은 "대한합기도협회"를 등록하여 한국에는 두 무도와 그들의 단체만 남게 되었다.

위 사진은 당시 유술의 전수자 최용술선생의 시범. 선생은 일본의 대동류유술(다이또류 야와라)을전수받고 해방이후 귀국하여 한국전쟁이후1953부터 야와라(유술)도장을 대구에 개관하고 일반에 지도하다가 당시 서울로 온 몇몇관장들이 그의 유술을 합기도라는 이름으로 변경하고 그의 유술(야와라)를 발전시킨후 최용술선생은1968년 전국무도통합대회를 계기로 그의 도장 명칭을 바꾸고 '합기도의 도주'로 추대 되었다.

1964년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한국무술협회 시범대회를 비롯해, 1967년 이주방태사의 '화랑도'교본이 출간된다.

UCI클럽의 화랑도수련프로그램 광고지.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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