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체육회, 소림축구 원조?
2021. 2. 4. 08:16ㆍReport/Research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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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원갑이 세운 정무체육회는 무술만 육성한 곳은 아니었다.
19세기말과 20세초 서양 문화의 유입과 함께 현대 스포츠가 상하이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무술로 돌아가는 스포츠, 시대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회원들의 관심을 충족시키는 정신에 따라 정무회는 점차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정무회는 무술 대회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을뿐만 아니라 무술세계에서 선두였고, 다른 스포츠도 도시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일부는 국가대표급이었다.
1924년에 정무체육회는 축구팀을 설립했다. 정무 축구 팀은 고도로 숙련되고 의욕이 넘쳤으며, 국내외 선수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나중에 신중국의 1세대 축구 국가 대표팀이 된 Chen Chengda와 Fang Renqiu는 모두 정무축구대표팀의 선수였다. 1948년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제 7회 전국 대회에서 상하이 대표단의 엘리트 선수 7명이 선발되었다. 해방 이후 도시의 프로팀과 상하이체육대학에 많은 인재를 보내기도 했다.
소림축구가 아니었을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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