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마구락부

2020. 6. 15. 15:14Report/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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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9.24.  동아일보 3면
1929.9.2. 동아일보, 7면   조선경마구락부 경마경기모습
1945년 10월 2일 신설동에서 해방을 맞이 한 후 첫번째 열린 경마대회 모습. 사진 출처 : 식품외식경제(http://www.foodbank.co.kr)

1922년 4월 5일, 우리나라 최초의 경마 법인인 조선경마구락부(朝鮮競馬俱樂部)가 설립인가를 받았다. 1920년대에는 서울의 조선경마구락부를 본받아 전국에서 경마구락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20여개가 되었다. 그러나  설립 인가를 제대로 받은 경마구락부는 전국 6도시에 6구락부뿐이었다. 인가받은 구락부는 서울의 조선경마구락부, 평양의 평남(平南)레이스구락부, 대구의 대구경마구락부, 신의주의 국경경마구락부, 부산의 부산경마구락부, 군산의 군산경마구락부다.

처음 약 10년간은 법인구락부의 인가만 제한할 뿐 경마의 개최를 통제하거나 단속하지 않았다. 따라서 임의단체가 경마를 시행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자유방임 경마'의 시기였다.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자 1942년 조선마사회령의 공포와 함께 전국의 경마구락부가 조선마사회로 단일화됐다. 조선마사회는 조선경마협회와 조선경마구락부 직원을 흡수하여 조직을 꾸렸으며 각 경마구락부로부터 전국의 경마장을 인수했다. 조선마사회가 인수한 경마장은 서울의 경성경마장을 비롯해 부산·대구·군산·평양·신의주·함흥·청진·웅기의 9개 경마장이었다.

한국마사회의 연혁을 살펴보면 1898년 5월 외국어학교 훈련원에서 학생들이 펼친 나귀경주가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그 뒤로 10년이 지난 1907년 한강 백사장에서 기병들의 경마가 펼쳐지기도 했다고 기록한다. 1914년 용산 구 연병장에서 조선공론사가 주최하는 조선경마대회가 있었는데 이는 한국경마에 있어 최초의 언론사배 경마대회가 아니었을까 추정할 수도 있겠다.

해방이후 신설동경마장에서 첫 경마를 시행하면서 조선마사회는 한국마사회로 불리게 됐다. 초대회장은 나명균으로 임명되었지만 그에 대해 전해지는 얘기는 없다. 그냥 한국경마사에 이름만 등재돼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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