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문약해서 망했네 - 조선일보

2019. 2. 27. 14:57Report/Marti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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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와중인 1593년 음력 10월 22일 선조가 정기 어전회의를 주재했다. 1년 반 전 개전 보름 만에 의주로 도망갔다가 환도한 지 석 주째 되는 날이었다. 왕이 말했다. "경상도 풍속은 아들이 글을 잘하면 마루에 앉히고, 무예를 익히면(一子業武) 마당에 앉혀 노예처럼 여긴다(如視奴隷). 오늘날 같은 일은 경상도가 오도(誤導)한 소치다. 육상산(陸象山)은 자제들에게 무예를 익히게 했고 왕양명(王陽明)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다 한다. 우리나라는 책만으로 애들을 가르쳐(只持冊子以敎子弟) 문무(文武)를 나누어 놓았다. 참으로 할 말이 없다."(1593년 10월 22일 '선조실록')

육상산과 왕양명은 성리학에 맞서는 실천적 유학을 주장한 사람들이다. 개국 후 200년 평화 시대가 파탄 난 이유를 선조는 남의 일 이야기하듯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는 강병(强兵)이 없었고 개인 차원에서는 무(武)를 천시한 결과라는 것이다. 예리한 분석은 분석으로 그쳤다. 폐허가 된 경복궁을 보면서 역대 권력자와 그 집단은 강병과 부국의 길을 찾지 않았다. 조선을 작살낸 일본은 책과 쌀을 구걸해 가는 무식한 소국(小國)에 불과했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27/2019022700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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